"이번에 놓치면 20년 밀린다"…1기 신도시 집주인들 '긴장'

정부, 연내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지정 계획
주민들, '순서 밀려 재건축 차질' 우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 모습. 사진=한경DB
정부가 1기 신도시 재정비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주민들 사이에서는 선도지구 지정을 두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선도지구에서 밀려나면 재정비가 기약 없이 늦춰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하반기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등 1기 신도시 지역별로 선도지구를 지정할 방침이다. 선도지구는 2025년 본격적인 정비사업 절차인 특별정비계획을 수립하고 2027년 착공, 2030년 첫 입주를 한다는 계획이다. 선도지구가 지역별 '재건축 1호'가 되는 셈이다.선도지구 지정 기준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조합 설립을 위한 주민 동의율 70%를 이미 달성한 단지들이 있다"며 신속한 재건축 추진 여건이 갖춰진 곳을 중심으로 선도지구가 지정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정 개수에 제한은 없다. 전세 시장에 큰 영향이 없다면 2~3곳도 지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1기 신도시에서는 선도지구 지정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선도지구 지정의 전초전으로 소유주의 재건축 조합 설립 동의율 확보가 한창이다. 분당에서는 정자동과 금곡동에 위치한 '정자일로(임광보성, 서광영남, 계룡, 화인유천, 한라)' 통합 재건축이 가장 먼저 사전 동의율 75%를 넘겼다. 정자동 '한솔1·2·3단지' 역시 동의율 75%를 달성했다.

'따로 또 같이'…1기 신도시 재건축 1호 경쟁

일산에서는 마두동 '강촌마을 1·2단지', '백마마을 1·2단지'와 일산동 '후곡마을 3·4·10·15단지', 백석동 '백송마을 5단지'가 고양시 재건축 사전 컨설팅 공모에 선정되며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 단지는 용역 시행을 위한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다. 중동 '금강마을'도 사전 동의율 77%를 확보했다.법적 효력이 있는 동의서 양식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동의율 경쟁이 벌어진 이유는 사업 지연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1기 신도시 29만2000가구가 동시 재건축을 하기는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만큼 순차적인 정비가 이뤄질 것인데, 순번이 뒤로 밀린다면 재건축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송마을 5단지를 방문해 아파트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선도지구 지정 요건인 통합재건축을 하지 못하는 개별 단지에서도 재정비 속도전이 벌어지고 있다. 평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방문했던 평촌동 '초원7단지'가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산본에서는 산본동 '한라주공4단지1차'가 1기 신도시 최초로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다.

평촌 A단지 재건축 추진준비위 관계자는 "연내 추진위 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선도지구에 준하는 속도를 내지 못하면 재건축을 수십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수요가 많은 만큼 인허가에서 순서가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다.

치솟는 공사비…정권 교체 가능성도 '리스크'

김효선 NH농협은행 김효선 부동산수석위원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때 재건축을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지역별로 재정비가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가장 늦어지는 곳은 20년 이상 기다려야 재건축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노후계획도시 특별법도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면 사업이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업이 지연되면 공사비 부담에 재건축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성남시는 7만1000가구가 거주하는 18개 동, 20개 구역을 대상으로 2002년부터 순차적 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진행 중인 곳이 많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사업이 늦어지는 동안 공사비는 계속 올랐고, 이를 감당하지 못해 문제가 생긴 곳도 있다"고 강조했다.

성남시 산성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해 공사비 인상을 두고 시공사업단과 갈등을 빚었다. 2020년 3.3㎡당 445만원으로 계약을 맺었는데, 지난해 시공사업단이 3.3㎡당 661만원으로 공사비 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조합은 시공사업단과 계약을 해지하고 새 시공사 선정에 나섰지만, 낮은 공사비 탓에 모든 건설사로부터 외면받은 끝에 기존 시공사업단과 3.3㎡당 629만원으로 재계약했다.김 소장은 "최근에는 재건축 공사비가 3.3㎡당 1000만원이 됐다"며 "재건축이 10년, 20년 지연되면 공사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사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