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 권고'에 뺨 때리더니…"위로금 4억 달라" 소송 건 직원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명예 퇴직 권고한 팀장 폭행한 직원
폭행죄 고소 위기에 사과하고 사표 제출
이후 "명퇴 위로금 3억8500만원 달라" 소송

명예퇴직일까 일반퇴직일까 쟁점
법원 "원래 해고 대상인데 퇴직해서 징계 면해" 회사 손
명예퇴직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이를 거절했던 직원이, 팀장을 폭행해 형사고소 당할 위기에 처해 퇴사 의사를 표시했다면 이는 명예퇴직이 아닌 일반퇴직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명예퇴직 절차를 밟을 경우 받을 수 있었던 위로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지난 12월 반도체 제조업체 C사의 전 직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퇴직금지급 청구'의 소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2022가합400922).

○'명예퇴직 대상자' 통보한 팀장 폭행하고..."위로금 3억8500만원 달라" 소송

1983년에 반도체 제조·판매업체인 C사에 입사해 일해온 A씨는 2020년 1월과 2021년 3월 등 2년 연속으로 자신이 속한 부서의 파트장 B로부터 명예퇴직 대상자로 선정됐다고 통보받았다. B의 의사 확인 요구에 대해 A는 거부의 뜻을 표시했다. C사가 제시한 명퇴 조건은 연봉 1억원과 연간 성과급 2500만원의 3년 치에 해당하는 3억 7500만원에 자녀학자금 1000만 원을 더한 3억8500만원이었다.

둘은 불편한 감정 아래 업무를 이어갔지만, 이듬해 7월 사건이 터졌다. A는 B와 업무 문제로 언쟁을 겪다가 B의 팔을 1회 내리치고 손바닥으로 뺨을 한 대 때린 후 여러 차례 강하게 밀치는 폭행을 저지른 것이다. 경추부 염좌로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은 B는 다음날 경찰서에 신고했다.

A는 당일 저녁 B에 "무조건 잘못했다. 용서를 빈다. 우선 경찰서 담당께 신고 건을 좀 거두어주십사 간곡히 요청드린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B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A는 다음 날 아침엔 사직의 뜻까지 밝혔다. A는 "개인적으로 자식이 아직 학생이라 회사를 더 다녀야 하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더 이상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심사숙고 끝에 그간 38년간 일해온 회사를 그만 두려 한다. 신고 건을 좀 거둬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B는 'A가 회사를 퇴직하면 신고를 취하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결국 A는 그날 '일신상의 사유'를 이유로 퇴직원을 제출했다. 퇴직원 제출 즉시 B는 경찰서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단 뜻을 밝혔고 사건은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됐다.

퇴직 절차와 폭행 사건이 마무리됐지만, A는 C사를 상대로 "명예퇴직금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명예퇴직이 성립됐는데도 위로금이 없는 일반 퇴직으로 처리했다는 주장이다.A는 "2020년경부터 명예퇴직자로 선정됐고 2021년에도 명예퇴직 청약을 받은 상태에서 퇴직원을 제출하면서 명예퇴직에 관한 의사가 합치됐는데, C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철회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원래 명예퇴직금 3억8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청구한 것이다.

예비적으로는 퇴직이 무효라고도 주장했다.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궁박한' 상태에서 퇴직 의사를 표시했으며 회사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법원 "원래는 해고 사유"...A 주장 기각

법원은 "명예퇴직이 성립됐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며 A의 주장을 기각했다. 원래는 해고사유라고도 판단했다.재판부는 "A가 처벌불원의사를 받기 위해 퇴직원을 제출하면서 '일반퇴직' 절차가 진행됐는데, 이는 협상을 거쳐 위로금 등의 액수를 정한 후 퇴직원을 제출하고 절차를 진행하는 명예퇴직과는 그 모습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A가 회사 측과 통화 과정에서 "딱히 뭐 우리가 정상적인 희망퇴직은 아니지만, 뭐 그런 부분 없어요?"라며 위로금 지급이 가능한지 문의한 것도 명예퇴직이 아니라는 판단의 증거가 됐다.

되레 재판부는 "A의 폭행은 C사의 취업규칙에 따르면 징계해고가 가능한 사유"라며 "A의 퇴직으로 인해 징계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가 궁박한 상태에서 사직서를 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퇴직원 제출 당시 인사팀 소속이었던 A가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의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대법 "명예퇴직 합의했어도, 비위행위 있으면 철회 가능"

명예퇴직은 근로자가 명예퇴직의 신청(청약)을 하면 사용자가 요건을 심사한 후 이를 승인(승낙)하면 성립된다.

엄연한 계약이기 때문에 당사자 일방이 특별한 사정 없이 임의로 철회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명예퇴직 예정일이 도래하면 계약에 따라 근로자는 당연히 퇴직하고, 사용자는 명예퇴직금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98다42172).

다만 대법원은 명예퇴직 합의 이후 명예퇴직 예정일 이전에 근로자에게 중대한 비위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명예퇴직의 승인을 철회할 수 있다(2000다60890, 60906)는 입장이다.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비위행위로 인해 사의 표시를 한 직원이 명예퇴직 대상자인 경우, 퇴직의 법적 의미가 문제 될 수 있으므로 퇴사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퇴직의 성질을 명확하게 해놓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