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철 "中서 번 돈 K바이오에 투자…레고켐 성장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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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레고켐 전격 인수오리온그룹이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함에 따라 허인철 부회장(사진)이 약 10년 전부터 신사업으로 주목한 바이오 사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제과가 주력인 오리온은 바이오와 간편대용식, 음료(생수) 등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투자를 확대해 왔다. 허 부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국 사업에서 번 돈을 한국 바이오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레고켐바이오가 세계적인 신약 개발 회사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10년 전부터 주목한 新산업
"식품·바이오 경계 허물어질 것
세계적 신약개발 회사로 육성"
中 바이오 시장 공략도 '가속'
○바이오 진출 4년 만에 성과
허 부회장은 레고켐바이오 인수 배경에 대해 “앞으로 식품과 바이오의 경계가 무너지고 ‘건강’이 글로벌 식품시장의 핵심 화두로 떠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우면서 임직원에게 수시로 강조했던 말이다.허 부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레고켐바이오와 접촉이 이뤄져 김용주 대표와 신속하게 딜을 추진하게 됐다”며 “앞으로 김 대표하에 자율 경영, 연구개발(R&D) 체제를 유지하고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항암 치료제 분야에서도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암 치료제는 급부상하고 있는, 규모가 큰 시장”이라며 “성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좋은 기술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개발해 세계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오리온이 기여하겠다”고 했다.레고켐바이오 인수는 허 부회장이 추진해 온 3대 신사업의 완결판이라는 평가다. 이마트 대표를 지낸 허 부회장은 2014년 오리온에 합류한 직후 건설 등 부진한 사업을 차례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간편대용식, 음료, 바이오 사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3대 신사업 중 간편대용식 시장 진출은 2018년 ‘마켓오네이처’를 선보이며, 음료 시장 진출은 2019년 프리미엄 생수와 단백질 드링크를 내놓으며 어느 정도 토대를 닦았다.○세계 2위 중국 시장 정조준
오리온은 2020년 10월 중국 국영 제약업체인 산둥루캉의약과 합자법인 설립 계약을 맺으면서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리온과 산둥루캉의약은 각각 65%, 35% 지분을 투자해 산둥루캉하오리요우를 세웠다. 오리온은 이 회사를 통해 기술 도입 계약을 맺은 지노믹트리의 대장암 조기 진단키트 등을 중국 시장에 공급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2024년까지 약 900억원을 투자해 산둥성에 백신 생산 시설도 구축한다.2022년 11월에는 그룹 지주회사인 오리온홀딩스 산하에 오리온바이오로직스도 설립했다. 오리온홀딩스와 국내 치과 질환 치료제 개발업체인 하이센스바이오가 각각 60%, 40%의 지분을 투자했다. 그해 말 그룹 신사업 발굴을 총괄했던 담철곤 회장의 장남 담서원 부장이 상무로 승진하면서 바이오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후 바이오 기업 알테오젠 인수에 나섰지만, 작년 7월 막판 협상 결렬로 무산됐다.오리온은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 ‘바이오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 데 속도를 낼 방침이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바이어 기업들이 꼽는 가장 큰 애로 사항은 유통망 확보다. 이 때문에 오리온이 막강한 유통 인프라를 앞세워 다수의 바이오 기업과 협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오리온은 1993년 중국 제과 시장에 진출했다. 30여 년간 쌓아 온 유통망과 네트워크가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바이오산업은 진입장벽이 높아 계획대로 사업이 이뤄질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한화그룹은 2010년 한화케미칼을 통해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나섰다가 판매 부진으로 6년 만에 철수했다.
하헌형/전설리/차준호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