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삼성 첨단 D램의 부활

메모리반도체 31년 연속 세계 1위. 전 세계 유례없는 신화를 쓰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직원들도 지난해엔 굴욕을 맛봤다. 평소 몇 수 아래로 내려다본 SK하이닉스로부터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일격을 얻어맞아서다. 시장조사업체들은 대놓고 경쟁사의 손을 들어줬다. 해외 고객들도 이천(SK하이닉스 본사)행 티켓을 먼저 끊었다. HBM은 ‘1등 삼성’의 자부심에 생채기를 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경쟁사의 선전에 대한 삼성전자의 대응은 ‘무시’에 가까웠다. HBM 기사엔 ‘전체 D램 시장의 5%도 안 된다’는 삼성발(發) 멘트가 계속 붙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 필수재로 부상하던 당시 HBM 시장의 분위기와는 온도 차가 너무 컸다. 업계 안팎에선 ‘삼성의 오판’이란 수군거림이 계속 들렸다.최근 삼성전자의 대응이 왜 그랬는지 실타래가 풀렸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은 지난 15일 올린 SNS에 “고객사들이 일반 서버 투자를 줄이고 GPU(그래픽처리장치) 서버 투자를 늘렸을 때, 시간이 지나면 일반 서버 투자가 다시 시작될 것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고 적었다. 경 사장이 언급한 GPU 서버, 즉 AI 서버엔 HBM, 보통의 서버엔 일반 D램이 주로 들어간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HBM 수요 성장성이 제한적이고, 서버용 일반 D램에 대한 주문이 다시 증가할 것으로 봤다는 해석이 나온다.

경 사장의 성찰적인 표현에 대해 업계에선 ‘삼성이 활력을 되찾고 있는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의 실수를 인정했다는 것은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어서다. 마침 AI산업 전반의 흐름이 서버를 넘어 스마트폰, 노트북, 자율주행차 등에서 구현되는 ‘온디바이스 AI’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HBM이 아니라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 PIM(프로세싱인메모리), LLW(저전력광대역) D램 같은 이름도 생소한 신상품의 경쟁력이 화두로 떠올랐다. 저전력·초고속 칩 개발, 경쟁사를 압도하는 양산 능력, 발 빠른 고객 대응 같은 삼성 반도체의 장기를 발휘할 시기가 다시 열리고 있다.

황정수 산업부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