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22兆 'AI 반도체 기판' 격돌

부품사 성장동력 'FC-BGA'

LG이노텍, 구미에 신공장 증설
삼성전기, 올해 베트남 공장 가동
대만·日 주도…후발주자로 추격
카메라모듈·MLCC 둔화 돌파구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인공지능(AI) 핵심 부품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사진)’ 시장에서 진검승부를 시작했다. FC-BGA는 AI용 반도체와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차세대 기판이다. 전력을 적게 쓰면서 전기 신호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많은 데이터 처리를 요구하는 AI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FC-BGA 시장도 2030년 22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부터 본격 양산

1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LG이노텍은 경북 구미 신공장 증설 준비를 마치고 FC-BGA 본격 양산에 들어갔다. 내년에는 2단계 생산 라인을 가동한다. 삼성전기는 올해 베트남 신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베트남 증설 물량이 더해질 경우 FC-BGA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FC-BGA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용 반도체에 주로 쓰인다. 후지키메라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FC-BGA 시장 규모는 2022년 80억달러(약 10조6400억원)에서 2030년 164억달러(약 21조80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FC-BGA에서 돌파구를 찾는 이유는 기존 사업으로는 더 이상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기는 카메라모듈과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LG이노텍은 카메라모듈이 주력 사업인데, 스마트폰 판매가 둔화하면서 실적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삼성전기는 2021년 1조4869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6562억원(증권사 전망치 평균)으로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LG이노텍 영업이익도 1조2642억원에서 8389억원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력 사업의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경기 침체까지 덮치면서 실적이 악화했다.

○대만과 일본이 시장 주도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FC-BGA 시장에서 후발 주자로 꼽힌다. 유니마이크론, 이비덴 등 대만과 일본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2017년 FC-BGA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LG이노텍은 시장 진입을 공식화한 2022년 첫 제품 양산을 시작했다.

국내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10% 안팎으로 추산된다. 삼성전기는 대규모 투자와 기술 혁신을 통해 글로벌 고객사를 공략하고 있다. 시장에 진출한 이후 국내외 생산시설 구축에 1조9000억원을 투입했다. 현재 7위 수준인 글로벌 점유율을 3위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지난 11일엔 유리 재질의 차세대 기판을 2025년부터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유리 재질로 바꾼 글라스 기판은 온도에 따른 변형과 신호 특성이 우수해 미세화·대면적화에 유리하다.

LG이노텍은 오랜 기판 사업 경험과 빠른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향상을 통해 추격하겠다는 전략이다. LG이노텍은 2022년 초 시장 진출을 공식화한 이후 넉 달 만에 양산에 성공한 바 있다. 공정 과정에서 딥러닝 기술을 도입해 수율 향상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인사에선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낸 강민석 부사장에게 기판소재사업부장을 맡겼다. 기존 기판소재사업부장은 손길동 전무였으나 강 부사장의 보직 이동으로 사업부장 직급이 승격됐다. 업계에선 강 부사장이 차세대 반도체 기판 공급 확대에 주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