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이식 선구자' 로이칸 별세…불가능 인식 깨고 인류에 희망

'미친 외과의사' 지탄받으면서도 불치환자 위해 반세기 헌신
신장·폐·간 등 첫 이식…면역억제제 상용화 등 눈부신 업적
노벨상 욕구 묻자 "이식환자 200㎞ 산악 트래킹이 더 큰 보상"
장기이식 수술을 보편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영국의 외과 의사 로이 칸 박사가 지난 6일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3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칸 박사는 장기 이식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1950년대부터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하며 장기 이식 수술 창시에 기여한 인물이다.

1950년 의대생이었던 그는 신장 부전으로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둔 환자를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장기 이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의학계에서는 장기 이식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장기가 몸에 들어왔을 때 이를 외부의 침입으로 여겨 공격하는 면역 반응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칸 박사는 '미친 외과 의사'라는 주변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돼지, 개 등을 대상으로 실험을 이어갔으며 1954년 처음으로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신장 이식에 성공하게 된다.

1967년 미국에서 토머스 스타즐 박사가 세계 최초 간 이식에 성공한 데 이어 칸 박사는 이듬해인 1968년 유럽 최초로 간 이식 수술에 성공했으며, 1986년에는 동료 의사 존 월워크와 함께 세계 최초로 한 환자에게 심장·폐·간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8년 뒤인 1994년에는 세계 최초로 한 환자에게 위와 소장, 간, 췌장, 신장을 함께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칸 박사는 장기 이식 수술의 필수 약물인 면역억제제 시클로스포린을 처음 상용화한 업적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1970년대에 스위스의 제약사에서 개발한 시클로스포린을 처음 수술에 사용하며 신장 이식 환자의 1년 이상 생존율을 기존의 50%에서 80%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1965년부터 1998년까지 33년간 케임브리지대에서 의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70대의 나이에도 직접 이식 수술을 집도했으며 80대에 들어서는 당뇨병 유전자 치료법을 연구하는 등 식지 않는 열정을 보여줬다. 의학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2012년에는 토머스 스타즐 박사와 함께 장기 이식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노벨상 다음으로 의학계의 권위 있는 상인 래스커상을 공동 수상했다.

평소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였던 칸 박사는 자신이 치료한 환자의 초상화를 직접 그려 집과 사무실 벽에 걸어 장식할 정도로 환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는 2012년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노벨상을 받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38년 전 내가 장기 이식을 한 환자가 최근 자전거를 타고 200㎞가 넘는 거리의 산악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왔다. 내게는 이것이 보상"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