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화가를 닮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화강석의 독특한 건축…거리 곳곳엔 벽화
강원도 양구에는 개관 20년을 넘긴 군립미술관이 있다. 이 지역 출신인 박수근(1914∼1965)의 이름을 딴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다.

박수근은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이른바 국민화가로 불린다.

박수근의 생가터에 세워진 미술관과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거리의 다양한 공간을 둘러봤다. ◇ 박수근의 고장

서울에서 양구까지는 차로 대략 2시간 30분이 걸렸다.

이동하는 동안 춘천, 화천 등을 지났는데 건너편 산기슭에 눈 쌓인 모습이 보였다. 양구에 도착해 보니 중부내륙 북부 산간의 겨울 날씨가 꽤 청량하게 느껴졌다.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을 찾아가는 동안 아파트와 주택 담장에 박수근의 대표 작품으로 꾸민 벽화와 거리의 동상 등이 차창 밖으로 지나갔다.

곳곳의 풍경이 양구가 박수근이 태어난 곳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먼저 미술관을 돌아보고 거리도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 관람객을 맞는 돌담…미술관의 첫인상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근처에 도착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물이 한두 개가 아니어서 어디까지가 미술관인지를 알 수 없었다.

바로 옆에는 공원도 붙어있다.

시야를 좁혀보니 한 그루 나무 아래 오톨도톨한 돌을 낮게 쌓아 올린 담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담장 안에 박힌 직사각형의 돌에 미술관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간소하고 개방된 느낌이다.

입구에서 몇걸음만 나아가면 돌을 높게 쌓아 올려 만든 독특한 건물이 보인다.

그 앞에는 키 큰 소나무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건물 외관이 언덕처럼 완만하고 상당히 길게 이어져 있다.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의 주요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박수근기념전시관이다.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이종호(1957∼2014)는 이와 관련해 "돌무더기는 30㎝ 정도의 크기로 부순 화강석을 거칠게 쌓아 만들었다"며 "박수근의 마티에르(질감)"라고 말한 바 있다.

흔히 박수근 작품 특징 중 하나로, 거친 요철의 질감을 꼽는다.

이 때문인지 미술관 입구 풍경에서부터 박수근 작품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졌다.

건축가 이종호는 200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 전시작가 중 1명으로 참가했다.

출품작은 박수근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은 그해 문을 열었다.

◇ 삶과 예술세계 조명하는 소장품 기획전
박수근기념전시관에서는 소장품 기획전 '나무 아래'가 열리고 있다.

사진과 작품을 통해 박수근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다.

일반 관람객과 함께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관람했다.

박수근은 12세 무렵에 밀레의 '만종'을 책에서 보고 화가를 꿈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을 겪은 그는 부두 노동자로 생활했으며, 1952년에는 미군 부대 내 매점(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전시 중인 사진은 박수근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 집 마루에 앉아있는 모습, 가족과 단란했던 순간, 초상화를 그리던 시절 등을 비춘다.

전시작 중 기획전 제목으로 쓰인 '나무 아래'라는 작품은 미술관이 2022년 소장하게 됐다.

작품 속에는 큰 나무 아래 일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그 나무의 몇몇 가지 끝에는 연한 연둣빛이 어렴풋하게 찍혀있다.

또 다른 유화 작품인 '나무와 두 여인', '한일'(閑日·한가로운 날), '마을 풍경' 등도 전시 중이다.

작품 속 풍경이 서민적으로 와닿고, 때로는 거칠면서도 은근한 힘이 느껴지는 듯했다.

도슨트와 함께한 관람객들은 1950∼1960년대 작품을 보며 당시 생활상이나 박수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전시는 3월 초까지 이어진다.
◇ 미술관 공간을 살펴보는 묘미

걸음을 옮겨 다른 전시관도 살펴봤다.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에는 차례대로 완성된 총 5개의 전시관이 있다.

이 중 현대미술관은 간결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다음으로 둘러본 박수근 파빌리온은 그물 모양의 단단한 철이 외관에 둘려 있다.

건물 이면에는 앞서 미술관 입구에서 봤던 화강석이 또다시 층층이 쌓여 있다.

내부를 둘러본 뒤 출구로 나가면 간소한 집 모양의 파빌리온과 옆을 흐르는 하천, 인근 산책로가 시야에 함께 들어온다.

건물과 자연이 잘 어우러졌다.

박수근기념전시관부터 현대미술관, 박수근 파빌리온까지 건축가 이종호가 설계했다.

이때까지의 기간을 따지면 10년이 넘는다.
현대미술관과 박수근 파빌리온에선 2023년 미석(美石)예술인촌 입주 작가전이 '천착하다'는 주제로 진행 중이다.

미석예술인촌은 양구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펼치는 이들의 마을이다.

전시에는 작가 10명이 참여해 다양한 미술작품을 보여준다.

박수근미술관에는 실감형 콘텐츠를 전시 중인 박수근 라키비움, 어린이미술관도 있다.

이렇게 총 5개 전시관이 있다.

관람을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박수근 기념공원을 걸었다.

천천히 산책하며 미술관의 다양한 건물을 밖에서 조망할 수 있었다.

미술관 부지 면적은 5만3천여㎡ 규모다.

◇ 거리의 벽화·광장·나무
미술관을 나온 뒤에는 바로 앞 주택 담장의 벽화에 눈길이 쏠렸다.

나무, 어린아이를 등에 업은 여성, 농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 화가의 작품에 나오는 이미지를 간소화해 그려놓은 것이다.

인근 거리에 있는 예풍경갤러리에선 '박수근미술관 예술가와 함께하는 예술 프로젝트' 전시가 진행 중이다.

'우리가 박수근을 기억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전시로, 작가 5명이 참여했다.

미술관 문턱을 넘지 않고 거리를 오가다가 관람할 수 있도록 작품을 설치해 뒀다.

이곳에서 조금 더 멀어지자 아파트 건물 4채의 한쪽 면 전면에 각각 박수근 작품 이미지를 그려놓은 벽화가 나왔다.

주변 도로에서도 잘 보였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벽화 아래에 각각 '농악', '휴식', '귀로', '창신동 풍경'이라고 쓰여있다.

양구읍 공영주차장 인근에는 박수근 광장도 있다.

광장에는 박수근 동상과 그의 주요작을 브론즈 및 석조로 표현한 작품이 설치돼 있다.

박수근이 양구에서 초등학교 재학시절 자주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는 나무를 찾아보기로 했다.

양구교육지원청 뒷계단으로 올라가면 보이는 '박수근나무'다.

이 언덕은 예전에 양구공립보통학교의 뒷산이었는데, 박수근이 이곳에 곧잘 올라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그의 벗들이 박수근 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수종은 느릅나무다.

미술관 외에도 곳곳에 박수근과 관련한 볼거리가 많았다.

◇ 대자연의 신비 느껴지는 파로호 한반도섬
이제 또 다른 바깥 경관을 보기 위해 이동했다.

양구읍 내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면 파로호 습지 내 한반도 모양의 인공 섬인 '한반도섬'을 볼 수 있다.

도착했을 때는 파로호에 앉아있다가 인기척에 놀란 조류 수십마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입구에는 한반도 모양이 새겨진 표지석이 있다.

한반도섬까지는 나무 데크가 이어졌다.

데크가 만들어낸 수평선과 주변의 나무가 수면에 비쳤다.

추운 겨울이지만 호수와 하늘이 기본 배경이어서 풍경이 예뻤다.

데크 입구에서는 한반도섬에 있는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주변 안내판에는 수질 정화와 생태계 복원을 위해 파로호 인공 습지가 조성된 것이라고 설명돼 있다.

한반도섬은 163만㎡ 규모의 파로호 인공 습지 내에 4만5천㎡ 규모로 조성됐다.

한반도섬은 아기자기했다.

내부에는 산책로, 포토존 등이 설치돼 있다.

인근에는 전망대도 있다.

근처 풍경을 바라보자 한반도 모양이 명확하게 보였다.

한반도섬을 지나서 또다시 푸른 호수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크고 작은 산등성이가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광활한 풍경이었다.

도시와는 다른 자연의 모습이다.

생각해보니 이러한 광경은 양구를 오가며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파로호 주변 조용한 숙소에서는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은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