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행진한다면 못해낼 것이 없다는 영화

[arte] 허남웅의 씨네마틱 유로버스
영화
영화로 사회 변화 촉구하는 선동가 타입의 감독
영국 북동부의 폐광촌에 시리아 난민 유입되는 상황 그려
영국 출신의 켄 로치는 영화로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선동가 타입의 감독이다. 사회 변화와 관련한 영화와 감독은 많지만, 켄 로치와 그의 영화가 차별되는 것은 연대로 대변되는 나란히의 가치만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강요(?)한다는 데 있다. 아무리 높은 가치라고 해도 그걸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사회 변화가 요원하다는 것이 켄 로치의 삶의 철학이자 영화에 임하는 태도다.

늘 사회적 약자가 처한 사각지대를 찾아 이를 영화적 배경으로 삼는 켄 로치의 신작은 <나의 올드 오크>(2023)이다. 이 영화의 무대는 영국 북동부의 폐광촌이다. 켄 로치는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와 <미안해요, 리키>(2019)를 연출하며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 적이 있다. 또한, 켄 로치가 감독한 건 아니지만,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도 이 지역이 무대이었다. 1980년대 초반 ‘철의 여왕’ 대처는 미래 가치가 상실했다는 명분을 앞세워 대부분의 광산을 폐쇄하거나 민영화하였고 이에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응수하다 일자리를 잃거나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처지에 몰렸다. (<빌리 엘리어트>) 더는 광산 일에 미련 두지 않겠다며 택배와 같은 배달 노동자 일에 뛰어든 사람들은 회사의 갑질에, 가족 해체에,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미안해요, 리키>)

고향을 등진 사람이 늘어나자, 이들의 부재를 메운 건 대도시에서 낙오된 이들이었다. 대도시의 삶과 물가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은 더 싼 보금자리를 찾아 빈 집을 채웠지만, 각종 편의 시설 및 복지 기능이 마비된 이곳에서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받지 못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런 상황에서 난민까지 유입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안 그래도 열악한 도시 환경으로 불만이 극에 달한 이들에게 난민은 시스템 대신 공격하기 손쉬운 대상이었다.
<나의 올드 오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영국 북동부의 폐광촌에 자리를 잡는다. 이들이 마을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여기가 무슨 낙오자들의 집합소냐며 욕지거리를 퍼붓고, 왜 자신들이 지불한 임대 비용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제공했느냐며 시리아 난민들을 도운 책임자를 향해 볼멘소리를 해댄다. 이를 앞장서 막아내고 시리아 난민들을 진정시키는 건 낡은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데이브 터너)이다. TJ의 펍을 찾아 매일 같이 맥주 한 잔으로 하루의 시름을 날려 버리는 사람들은 일부의 마을 주민이다. 이들 덕에 TJ는 입에 풀칠이나 하는 삶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올드 오크의 매상을 올려주는 소수의 손님이 바로 시리아 난민들을 보면 눈을 흘기고 적의를 드러내는 이웃이란 사실이다.

TJ 입장에서는 펍을 찾는 손님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하려는 난민들이나 모두 귀한 존재들이다.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싶어도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치 형국이 워낙 강고하다 보니 어느 한 편에 서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다. 이에 대해 켄 로치 감독은 “‘이처럼 힘든 시대에 희망이란 어디에 있는가?’라고 질문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 어려운 질문에 관한 답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죠.”라고 이 영화를 만든 배경을 설명한다.
켄 로치 감독은 자신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극 중 인물들이 처한 삶의 조건에서 찾는다. 서로 등을 돌린 원주민과 난민은 모두 열악한 삶의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매일 같이 벌이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서로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 손을 잡고 부자와 빈자, 도시와 시골, 내부인과 외부인 등 이분법을 지배의 헤게모니로 삼는 시스템에 맞서 기울어진 사회 환경의 개선을 도모해야 할 이웃이고 동지이고 가족이다. 그래서 함께하는 식사의 가치는 이들에게 더욱 특별하다. 더욱이 시리아 난민은 물론 원주민들까지 한 끼를 먹는 것조차 버거운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진 이들이 나눔의 자리를 마련한다는 건 단순히 함께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날카롭게 선을 긋던 불신의 테두리를 서로를 향해 둥글게 돌려 원의 커뮤니티를 만듦으로써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우리라는 가치를 심어줌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켄 로치는 더 좋은 사회를 위한 메시지 전달에 감독의 의무를 한정하지 않고 관객들이 행동으로 실천하게끔 영화적으로 촉구한다. <나의 올드 오크>의 마지막은 함께하는 식사를 통해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깨달은 이들이 식사 자리로 형성된 커뮤니티의 규모를 더 키우려고 거리로 나가 ‘행진’의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의 동참을 호소하는 장면에 할애된다.
켄 로치의 의도대로 라면 이 영화가 내민 손을 잡은 관객들이 극장 밖으로 나가 주변에 다른 한쪽의 손을 내밀 테고 그럼으로써 연대의 커뮤니티는 점점 원의 크기를 키워가 구체적인 형태의 희망을 실천할 수 있을 테다. 그게 켄 로치 영화의 저력이다. 유의미한 질문을 제기해 관객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는 많다. 그 많은 좋은 영화 중에서 켄 로치의 작품이 더 특별한 건 질문과 답을 모두 영화 속에 담아 관객이 생각과 실천을 동시에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어서다. <나의 올드 오크>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이유다. ▶▶▶(관련 칼럼) 암울한 정치, 우울한 세상? "영화만이 바꿀 수 있다"는 켄 로치

허남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