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에 맞선 '호구들의 존버'… 똘똘 뭉친 개미들은 성공했을까

[영화 리뷰] '덤머니'
‘포효하는 냥이’와 개미들은 어떻게 뭉칠 수 있었을까
2021년 월가의 게임스톱 주가폭등 사건을 영화화
속도감 돋보이지만.. 전형적인 선악 구도는 한계
주식 시장의 개미들에게 공매도 세력은 ‘공공의 적’이다. 자본 넉넉한 큰 손들이 주가 하락에 베팅해 공매도를 걸면, 그 종목에 희망을 건 개인 투자자들은 판판이 잃고 나온다. 그런데 3년 전 월스트리트에선 그 반대 상황이 벌어졌고, 할리우드는 발빠르게 이를 스크린으로 낚아챘다.
영화 ‘덤 머니’는 2021년 미국 주식시장을 달궜던 ‘게임스톱’ 주가 폭등 사건을 다룬다. 개인 투자자들이 똘똘 뭉쳐 주식을 사들이고 ‘존버(끝까지 버팀)’함으로서, 월가의 거물과 맞짱을 떴다는 건 확실히 영화적이다. ‘덤 머니’는 멍청한 돈, 즉 금융시장 전문가들이 어리석은 개인투자자를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 월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헤지펀드였던 멜빈캐피털은 주가가 내려갈 종목들을 선택해 대규모 공매도에 나서는 전략을 주로 썼다. 막대한 사업 손실을 내고 있던 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은 이들의 먹잇감이 됐고, 주가 또한 이들의 전망대로 바닥을 향한다.

그런데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게시판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 WSB)'의 개인 투자자들이 이 주식을 열심히 사들이며,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한다. ‘포효하는 냥(Roaring Kitty)’이란 아이디로 개인 방송을 진행하던 키스 길(폴 다노)이 이들을 결집시킨 주인공.
그는 게임스톱의 주가가 저평가돼있다며 매수를 고집하고,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공개한다. 그가 승리하려면 펀더멘털에 대한 정확한 분석만으론 부족하다. 함께 매수에 나서서 주가를 끌어올릴 세력이 필요하고, 그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주가가 올랐다고 비겁하게 혼자 털고 나가지 않겠다는 믿음.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 ‘옥자’의 배우 폴 다노는, 빨간 헤어밴드에 고양이 그림 티셔츠를 입은 괴짜를 나름의 진실한 인물로 재현한다. 그의 방송을 듣고 함께 매수에 나서는 개미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게시판 유저들이 서로를 믿을 수 있을까.
영화는 이들 개미투자자들에게 하나하나 캐릭터를 부여한다. 학자금 마련이 고민인 대학생, 게임스톱의 말단 직원 등이다. 특히 코로나 시국에 고생하던 (게다가 싱글맘인) 간호사(아메리카 페레라)가 그 대표격으로 그려진 부분에서, 영화의 메시지가 읽힌다. 이들 힘없고 ‘악의 없는’ 개미들이야말로 승리할 가치가 있다는 것.자칫 스토리를 얄팍하게 만들 수 있는 선악 구도의 함정을 영화는 아슬아슬하게 맴돈다. 헤지펀드 멜빈캐피털의 창립자 게이브 플롯킨(세스 로건) 등은 개미들을 ‘호구’라고 비웃으며 공매도를 고집한다. 그는 배불뚝이 냉혈한으로만 그려지지 않으며, 아내의 추궁(‘얼마나 잃었어?’)에 진땀 흘리는 남편으로 인간미를 조금은 부여받는다. 동료 헤지펀드와 주식거래 앱 ‘로빈후드’의 인물들은 이보다 전형적인 빌런에 해당한다.

개미들이 힘을 합쳐 주가를 끌어올릴수록 스릴은 커진다. 현금화의 유혹에 빠져 나도 나도 매도에 나서는 순간, 승리는 헤지펀드의 몫이 된다. 개미들의 결집을 다지는 것은 WSB, 즉 인터넷 게시판이다. 이들이 ‘존버’의 열망을 담아 순식간에 퍼뜨리는 온갖 웃긴 이미지들, 밈은 영화를 유쾌한 톤으로 이끈다.
‘덤머니’에 기시감을 느낀다면 애덤 맥케이의 2015년 영화 ‘빅쇼트’ 때문일 것이다. 금융위기를 다룬 ‘빅쇼트’의 대성공 이후, 할리우드는 돈 이야기와 아드레날린의 결합을 즐기는 듯하다. 다채로운 인물들이 금융시장의 전문 용어를 유쾌하게 떠들고, 주가와 실적과 승패를 롤러코스터같은 편집으로 재현해내는 것. 다소 판에 박힌 느낌은 들지만, 덕분에 대단한 지식이 없이도 영화를 이해하기에 무리 없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에 대한 영화 ‘아이,토냐’(2018)로 주목받은 크레이그 길레스피가 연출을 맡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 출신인 레베카 안젤로 등이 각본을 썼고, 트레이더로 일했던 테디 슈바르츠먼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얼마 전인 코로나 팬더믹 시절,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모습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이들 제작진의 발빠른 제작 덕분일 것이다.
김유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