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콘서트홀 '간판' 된 한재민 "첼로 한 대로 2000명 장악하는 무대 보여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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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첼리스트 한재민“무반주 첼로 리사이틀은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어왔던 프로그램이에요. 사실 피아노 반주 없이 첼로 하나로 80분 공연 전체를 채워야 하는 만큼, 무척 설레고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론 부담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첼로가 홀로 연주될 때도 충분히 매력 있는 악기란 걸요.”
롯데콘서트홀 상주 음악가
'인 하우스 아티스트' 선정
"무반주 리사이틀은 오래 꿈꿔온 무대"
바라티, 박재홍과 트리오 연주도 기획
"음악가로서 정체성 찾고자 매일 고민"
19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리허설룸.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등장한 첼리스트 한재민(18)은 의자에 앉은 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첼로 위에 손을 올렸다. 활을 현에 밀착시키면서 깊은 울림을 불러낸 한재민은 음 하나하나에 풍부한 색채를 덧입히면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중 ‘사라반드’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몽환적인 정취를 마음껏 표현했다.2021년 루마니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사상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우며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놀라게 한 첼리스트 한재민이 청중과 만난다. 2024년 롯데콘서트홀의 상주 음악가인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데 따른 무대에서다. 상주 음악가 제도는 공연장 또는 오케스트라에서 실력이 뛰어난 예술가를 선정하고, 이들이 직접 기획한 공연을 1년간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롯데콘서트홀은 2021년부터 ‘인 하우스 아티스트’를 뽑아왔다. 그간 코리안 체임버 오케스트라, 에스메 콰르텟, 첼리스트 문태국, 피아니스트 신창용 등이 이 자리를 거쳐 갔다.한재민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게 돼 너무 기쁘고 영광이다”라며 “상주 음악가라고 하면 한 해 동안 공연장의 간판이자 얼굴이 되는 만큼 책임감을 갖고 매 무대를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했다. 한재민이 기획한 첫 공연은 무반주 첼로 리사이틀이다. 그는 오는 3월 2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존 윌리엄스, 가스파르 카사도, 죄르지 리게티, 졸탄 코다이의 독주곡을 연주한다. 피아노 반주 없이 첼리스트 홀로 2000여 석의 대형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는 “무반주 리사이틀은 올해 손에 꼽으면서 기다리는 연주 중 하나”라며 “첼로 리사이틀이라 하면 보통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가 함께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첼로는 혼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너끈히 사로잡을 수 있는 악기”라고 했다. 그가 꼽은 이번 리사이틀의 메인 디시는 코다이의 첼로 소나타다. 그는 “이 곡은 성향이나 분위기가 나와 정말 잘 맞는다”며 “연주하기는 굉장히 까다로운 곡인데, 연주를 마칠 때 느껴지는 희열은 모든 첼로 작품 중 세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엄청나다”고 했다.오는 10월 30일엔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토프 바라티,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함께 3중주를 들려준다. 두 연주자 모두 한재민이 직접 섭외했다. 라흐마니노프, 드보르자크, 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가 공연의 레퍼토리다. “평소 크리스토프 바라티의 연주를 들으며 그와 함께 호흡하고 싶단 생각을 해왔어요. 별다른 친분 없이 트리오 연주를 제안했는데, 흔쾌히 수락해 줘서 너무나 기뻤죠. 박재홍 형과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에요. 음악적으로 배우는 게 너무 많은 선배죠. 밸런스를 기가 막히게 맞춰주는 피아니스트이기에 제가 믿고 가는 면이 많아요. 하하.”올해 막 18세가 된 앳된 소년이지만, 그가 지금껏 쌓아온 커리어를 보면 무서울 정도다. 루마니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독일 도차우어 국제 콩쿠르, 헝가리 다비드 포퍼 국제 콩쿠르, 일본 오사카 국제 콩쿠르, 윤이상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한 첼리스트라서다. 2022년엔 60여 년 전통의 명문 클래식 매니지먼트 회사인 KD 슈미트와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첼리스트로 올라섰다. 그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일까.
“콩쿠르 우승 이후 ‘알을 깨고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직도 많이 어리고 배울 게 많지만, 음악가로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만의 색깔을 찾고, 더 근본적인 요소들을 살피고, 초심을 되새기면서 음악을 대하고 있달까요. 아주 복잡한 문제이기에 이 고민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저 자신을 괴롭혀볼 생각입니다. 이 시간이 제가 음악가로서 한 발 더 성장하는 발판이 될 테니까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