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콘템포러리'로 흥행 성공한 아트SG…싱가포르, 亞 미술 허브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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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최대 아트페어"아트SG가 올해 '2년 차 징크스'를 비껴갈 수 있을지 여부가 관건이다."
제2회 아트SG 19일 개막
코로나19 이후 중국 '큰손' 돌아오자
작년 행사 저조한 성적 우려 딛고
흥행·전시구성 두 마리 토끼 잡아
LGBT 배척하는 보수적 미술 풍토
홍콩·서울 등 강력한 경쟁자 존재는 위협
미국의 아트뉴스(ART news)는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컨벤션센터에서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린 '제2회 아트SG'를 앞두고 지난 18일 이렇게 보도했다. '동남아시아 최대 아트페어' 아트SG에 대한 관심이 데뷔 첫해인 작년에 비해 줄어들며 부진할 것을 염두에 둔 지적이었다.작년 행사부터 이미 기대 이하의 성적을 올렸다는 점이 우려를 더했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여파로 전반적인 미술 시장이 위축된 데다가, 코로나19로 중국 컬렉터들의 발길이 묶인 영향이 컸다. 올해 행사는 작년 35개국 164개 갤러리보다 30%가량 줄어든 114개 갤러리가 부스를 차렸다. 빅토리아 미로, 데이비드 즈워너 등 해외의 명문 갤러리들도 줄줄이 발을 뺐다.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작년에 비해 흥행과 전시 구성 모두 한발 앞서갔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 19~21일 아트SG 행사장에서 만난 국내외 미술계 인사들은 "참석 갤러리의 수는 줄었지만, 지갑을 여는 컬렉터의 수는 오히려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통제가 완화되자 중국과 인도네시아, 인도 등지의 '큰손'들이 싱가포르로 몰려왔다는 분석이다. 거기에 작년 행사로 시행착오를 거친 갤러리들이 동남아시아 현지 시장의 선호를 맞춤 저격한 ‘콘템포러리’ 작품들을 대거 꺼내 들며 흥행에 불을 지폈다.
동남아 컬렉터의 선택은 ‘아시아 콘템포러리’
올해 아트SG의 화두는 '아시아계 콘템포러리'였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컬렉터를 타깃으로 '요즘 뜨는 작가들'을 내세운 것이다. 전시장 입구부터 중국의 인기 작가 아이웨이웨이가 레고로 만든 모나리자 작품이 걸렸다. 아시아아트센터는 대만 조각가 리첸과 주밍의 작품을 가져왔고, 커다란 잉어나 호랑이를 그린 그림이나 마오쩌둥의 점묘화 앞엔 가격을 문의하는 중국인 컬렉터들로 북적였다. 국제갤러리, 가나아트, 조현화랑, 더컬럼스 등 국내 주요 갤러리들도 아트SG에 부스를 차렸다.이번 행사의 중심은 값비싼 '마스터피스'보단 잠재적 투자가치를 고려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차지했다. 발길이 쉽게 닿는 컨벤션센터 1층에 신진 작가의 작품 위주로 전시하고,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작품들을 지하 1층에 배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페레스 프로젝트는 1990년대생 작가 마크 파데우와 안톤 무나르의 회화를, 카이카이키키는 일본의 네오팝 아티스트 미스터(Mr.)의 작품들을 선보였다.주민영 조현갤러리 이사는 "키아프-프리즈 서울이 '하이 앤드'를 찾는 컬렉터를 중심으로 형성됐다면, 아트SG는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은 대신 실제 구매 빈도가 높은 '알짜배기' 시장인 셈"이라고 말했다. 일본 화이트스톤 갤러리의 한 관계자는 "1만5000 달러(약 2000만원) 수준의 쿄헤이 코모리의 회화에 대한 문의가 빗발쳤고, 개당 2500달러(약 330만원)의 리 웨이 & 리우 지인의 조각은 전부 동났다"고 했다.첫날부터 수억~수십억원대에 이르는 대작들을 찾는 '큰손'들의 수요도 이어졌다. 리만머핀이 가져온 데이비드 살르의 회화와 이불 작가의 작품 두 점은 30만달러(약 4억원) 선에서 새 주인을 만났다. 웬디 쑤 화이트큐브 갤러리 아시아지역 매니저는 "본 행사에 앞선 VIP 시사회부터 갤러리가 가져온 대표작 5점이 150만 파운드(약 25억 4700만원) 선에서 전부 팔렸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동남아 '미술 허브'로 주목받는 이유는
싱가포르가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해양 실크로드의 요충지다. 또 미술 시장은 돈의 흐름이 집중되는 곳에 형성되는데, 싱가포르는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행사장에서 만난 한 미국인 컬렉터는 “한국은 북한이라는 위협이, 일본은 자연재해라는 변수가 존재한다”며 “아시아 미술시장의 전통 강호인 홍콩마저 중국의 규제로 시들해진 지금, 싱가포르야말로 ‘슈퍼 리치’들의 매력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초고액 자산가들한테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싱가포르 내 ‘패밀리 오피스’가 2016년 70여개에서 7년 사이 1000여개로 급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본격적인 아트 허브로 떠오르기 전 현지 시장을 선점하려는 갤러리도 증가하는 모양새다. 아시아 최대 화랑 중 하나인 탕 컨템포러리의 박혜연 지사장은 “오는 6월 싱가포르에 분점을 연다”며 “당장의 로컬 시장 규모는 작지만, 싱가포르 국민의 잠재적 구매력과 동남아시아 주변 국가들과의 인접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한국 미술계도 싱가포르를 주목하고 있다. 행사장을 찾은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싱가포르는 동남아 시장의 미술 트렌드를 배우기 위한 ‘테스트 베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싱가포르는 해외 진출을 계획 중인 키아프 서울의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라고 했다.
보수적 미술 풍토, 홍콩·서울 등 거대 라이벌 존재 등 '위협'도
당면한 과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싱가포르 컬렉터는 “최근 글로벌 미술시장의 최고 화제 중 하나인 ‘성소수자(LGBT)’ 장르는 싱가포르 내에서 활발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며 “보수적 예술 관행이 계속된다면 최신 트렌드를 좇는 컬렉터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홍콩과 서울, 도쿄, 대만 등 아시아 지역의 전통 강자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문제다. 당장 오는 3월에 아트바젤 홍콩에서 세계적인 갤러리 243곳이 부스를 연다. 주변에 이미 기반이 잡힌 아트페어가 많을 경우, 소비자들은 굳이 멀리 싱가포르까지 찾을 이유가 없다.아트SG를 공동 창립한 매그너스 랜프류는 “홍콩이나 서울을 라이벌로 보기보다는, 미술시장의 공동 성장을 위한 선의의 경쟁상대로 보고 있다”며 “아시아 지역의 급증하는 미술 수요를 고려할 때 모든 아트페어가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싱가포르=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