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 '미다스의 손' 랜프류…"아시아 미술시장, 제로섬 게임 아니야"

'아트SG' 공동 창업자 매그너스 랜프류
홍콩, 도쿄, 대만 등지서 아트페어 개척해와

"아트바젤, 프리즈 등 거대 세력 있지만
제로섬 게임 아닌, 선의의 경쟁상대"

"싱가포르 미술 시장 잠재력에 주목
아시아 지역 내 네트워크 강화할 것"
'전 세계 미술시장이 아트바젤과 프리즈라는 '거대 공룡'에 의해 양분되고 있다.'

'미술시장의 꽃'으로 불리는 아트페어의 최근 세계적 동향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두 개의 거대 세력이 탄탄한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바탕으로 동네 미술 장터들을 집어 삼키는 모양새다. 아트바젤은 2004년 마이애미 진출을 시작으로 홍콩과 파리 등 각 대륙의 주요 아트페어를 먹어 치웠다. 프리즈는 런던을 거점으로 뉴욕과 시카고, 서울 등에서 막강한 체급을 자랑하고 있다.
아트SG 공동창업자 매그너스 랜프류. Photo by Joyce Yung /아트SG 제공
"정면 승부가 어렵다면, 남들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은 시장을 노리는 건 어떨까."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8년. 32세 청년이던 매그너스 랜프류(48·사진)는 그렇게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미국에 집중됐던 미술시장이 향후 아시아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란 믿음에서다. 예견은 적중했다. 그가 세운 '아트 홍콩'은 훗날 아트바젤의 모기업인 MCH가 인수하며 현재 세계 최대의 아트페어 중 하나인 ‘아트바젤 홍콩’의 모태가 됐다. 이후로도 그는 대만의 '타이베이 단다이', 일본의 '도쿄 겐다이' 등을 공동 개최하고 있다.

아트페어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그가 바라본 새로운 '블루 오션'은 싱가포르다. 19일부터 21일까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회 아트SG' 행사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그는 "향후 싱가포르가 '21세기 아트 실크로드'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동남아시아는 인구 규모가 유럽과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시장이고, 동시에 가장 가파른 경제 성장을 보이는 지역이죠. 싱가포르의 로컬 시장은 아직 활발하지 않지만, 동남아 요충지로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국제 미술시장에 혈혈단신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트SG와 도쿄 겐다이, 타이베이 단다이 등 그가 열고 있는 행사의 체급은 아직 아트바젤과 프리즈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그는 "우리는 가장 오래전부터 아시아 미술 시장을 개척해왔다"며 "오랜 시간 축적한 경험과 네트워크로 아시아 내 존재감을 점차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시아 지역 아트페어들의 경쟁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홍콩의 아트바젤, 서울의 프리즈…. 막강한 경쟁자들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아시아 지역의 급증하는 미술품 수요를 만족할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한 선의의 경쟁 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8만명이 넘는 방문객을 불러모은 키아프-프리즈 서울에 대해서는 "서울은 우수한 인프라와 막강한 갤러리, 최고 수준의 아티스트를 보유한 중요한 시장"이라며 "앞으로도 프리즈를 비롯한 세계 유수 아트페어들의 핵심 목적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그는 인터뷰 내내 성공적인 아트페어의 기준으로 '지역과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그는 "올해 참가 갤러리 등 전반적인 행사 규모는 작년에 비해 줄었지만, 오히려 지역 미술계와의 네트워크를 다지는 기간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아트페어 행사장 밖에서 벌어지는 지역 기반 프로그램 규모는 작년에 비해 늘었다. 지난 17일 싱가포르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린 특별전과 디너파티에는 1000명이 넘는 컬렉터가 몰려들었고, 아트SG 기간 내내 싱가포르 아트뮤지엄 등지에서 위성 행사가 이어졌다.

"싱가포르 로컬 시장 규모에 비해 작년 1회 행사를 지나치게 크게 기획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참가한 갤러리와 방문객들과 대화를 나눠봤는데, 오히려 올해의 규모에 더 만족한다는 피드백이 많았습니다. 엄선된 작품들을 더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고, 컬렉터와 갤러리 사이 긴밀한 네트워크를 쌓는 데 도움이 된 측면도 있었습니다."

세계 곳곳을 오가며 '새 판'을 벌이는 그이지만, 랜프류는 "당분간 싱가포르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싱가포르 방문객한테 미식과 레저 등 도시의 총체적인 매력을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계획입니다. 싱가포르 지역 미술계에서 아트SG에 대한 자부심이 생길 때, 비로소 제 임무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싱가포르=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