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만에 삼성 잡은 소니"…되살아난 日 기업의 네가지 비결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포스트코로나' 되살아나는 일본 기업下

부활하는 일본 기업의 네가지 공통 키워드는
세계화·사업재편·DX·M&A..SATORI 경영
히타치 해외근무자 20년새 20%→57%
가구 제조·판매업을 유니클로처럼 바꾼 니토리
NIDEC 40년간 M&A 72건..불문율 파괴도 서슴찮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포스트코로나' 되살아나는 일본 기업上에서 계속 2023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1999년 이후 24년 만에 소니그룹에 뒤진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과 소니 뿐 아니라 한일 대표 기업간의 위상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다시 한 번 크게 변했다.
일본 최대 가구회사인 니토리홀딩스, 세계 최대 모터회사인 NIDEC(옛 일본전산)까지 포함시켜 일본 대표기업들의 변신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세계화, 사업재편, 디지털 대전환(DX), 기업 인수·합병(M&A).

다시 살아난 일본 기업의 네 가지 공통점이다. 히타치제작소, 소니, 도요타, NIDEC, 니토리는 자국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2년 약 30만명이었던 히타치제작소 임직원 가운데 해외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20%였다. 2022년 36만8000명으로 불어난 히타치 임직원의 57%가 해외에서 근무한다. 소니그룹은 2012년 매출의 68%를 차지하던 전자 사업의 비중을 지난해 34%까지 줄였다. 그 사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비중은 17%에서 51%로 늘렸다.
올 상반기 NIDEC의 매출에서 일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6.2%에 불과했다. 나머지 83.7%가 해외에서 나왔다. 미국(24.3%), 중국(23.6%), 유럽(20.6%) 등 세계 3대 시장에서 고르게 제품을 팔았다. 니토리는 세계 최대 가구기업 이케아가 맥을 못 출 정도로 일본을 제패했다. 현재 3.8%인 해외 매출 비중을 2025년 1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일본 대표 기업들도 물론 위기를 겪었다. 이들을 변하게 만든 건 생존 경쟁이었다. 히타치와 소니 등 일본 전자기업들은 2000년대 대규모 적자가 반복되는 암흑기에 빠졌다. 니토리는 일본 유통업계에서 '지옥'으로 평가받는 홋카이도의 불황을 넘었다.
세계로 나가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사업재편이 필수였다. 히타치는 지난 15년간 사업의 중심을 내수시장, 대량생산 제품에서 글로벌화와 IT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모태사업과 주력사업을 팔아치우는 모험도 감수했다. NIDEC은 모터 일변도의 사업을 자동차 전장사업과 공작기계 사업으로 확대했다. 사업 재편의 방향을 단순 제조업에서 IT를 접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잡은 것도 이 기업들의 공통점이었다. 니토리는 '제조·물류·IT 소매업'이라는 신(新)장르를 개척했다. 물류에 IT를 접목시켜 가구 제조·판매업을 유니클로와 같은 패스트패션(SPA) 산업으로 진화시켰다.
히타치는 인프라의 DX를 돕는 사물인터넷(IoT) 인프라 서비스업체로 변신했다. 소니는 콘텐츠 제작부터 배급까지 새로운 사업 생태계를 창출했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면 끝인 제조업을 구독경제와 플랫폼 사업과 같이 네트워크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사업모델로 진화시켰다.
사업재편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M&A를 선택한 것도 닮은 꼴이다. NIDEC이 지난 40년간 성사시킨 M&A는 72건에 달한다. 매년 두 건 꼴로 기업을 사들인 셈이다. 히타치는 지난 10년간 M&A에만 4조엔(약 36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니토리는 필요한 M&A라면 경쟁사가 교섭 중인 인수 대상을 가로채는 등 일본 재계의 불문율을 파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의 저명 투자가인 이이 데쓰로 커먼스투자신탁 창립자 겸 대표는 앞으로 30년 후에도 살아남을 기업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사토리(SATORI) 전략'을 든다.
일본어로 '득도', '깨달음'이라는 뜻의 사토리는 사회기여(Society)와 민첩한 변화(Agility), 기술(Technology), 해외 진출(Overseas), 복원력(Resilience), 융합(Integration)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표현이다.

다시 살아난 일본 기업들은 모두 사토리 전략에 정통했다. ESG(환경·사회·기업 지배구조) 경영의 시대를 맞아 주력사업을 IT와 접목시켜 해외로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민첩한 변화를 통해 코로나19의 충격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했다.
노나카 이쿠지로 히토츠바시대 명예교수는 '잃어버린 30년'의 원인을 "일본 기업들이 리스크를 과잉 관리한 나머지 현상 분석을 중시하는 경영에 치중한 결과 테슬라와 같은 게임체인저가 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혁신은 리스크를 과감하게 받아들일 때 탄생하는 것"이라며 "(되살아난 일본 기업들은) 디지털화의 본질을 쫓는 경영모델을 통해 조직의 의식을 철저히 바꿨다"고 말했다.

되살아난 기업과 도태된 기업을 구분하는 투자가들의 눈은 매서웠다. 잘나가는 일본 기업들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크게 개선됐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PBR 1배 미만은 시가총액이 회사를 청산한 가치보다 낮은 상태로 투자자의 신뢰를 받지 못함을 뜻한다.
2019년 0.96배였던 히타치의 PBR은 올해 1월23일 기준 1.96배로 개선됐다. 일본을 대표하는 또다른 전자회사이자 히타치의 경쟁사였던 도시바의 몰락과 대조를 이룬다. 도시바는 부진을 거듭하다 지난 12월20일 도쿄증시에서 74년 만에 상장폐지했다. 도요타의 PBR은 1배를 넘었다. 1.6배였던 소니의 PBR은 2.5배로 앞자리가 달라졌다. 반면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의 PBR은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오히려 나빠졌다. 한국 대표 기업들은 30년 뒤를 내다본 생존 전략을 세우고 있는지, '한국판 사토리(SATORI) 경영'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라는 지적이다. '포스트코로나' 되살아나는 일본 기업 끝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