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70년 日 파벌정치의 종언?

한국 정치인들의 선거자금 마련 창구가 출판기념회라면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돈줄’은 정치자금 파티다. 한 장 2만엔인 파티권(券)을 단체나 기업에 파는데 파벌 소속 의원들에게는 당선 횟수 등에 따라 할당량이 주어진다.

지난해 말부터 일본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것이 이 정치자금 파티를 둘러싼 의혹이다. 할당량을 초과한 금액을 수지보고서에 기재하지 않고 의원에게 뒷돈으로 돌려줘 비자금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전국의 검사 수십 명을 차출해 수사에 착수하면서 ‘레이와(令和) 시대의 리크루트 사건’이라고도 불리는데 ‘요란한 빈 수레’가 돼가는 모양새다. 도쿄지검은 의원 3명과 3개 파벌의 회계 책임자 등을 정치자금규정법 위반으로 입건하며 사실상 수사 마무리 단계다.특이한 것은 자민당의 6개 파벌 중 이번 사건에 연루된 3개 파벌이 모두 해산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당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98명)와 기시다파(46명), 니카이파(38명)다. 일단 아소파(56명)·모테기파(53명)·모리야마파(8명)는 해산에 부정적이지만 오늘 자민당 정치쇄신본부가 파벌 문제 등에 관한 중간 쇄신안을 내놓기로 해 파벌 해체 논의가 확대될 수도 있다.

1955년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 합당해 탄생한 이후 일본 정치를 지배해 온 자민당은 곧 파벌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보스를 중심으로 뭉친 파벌은 정치 부패의 근원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한편으론 ‘당 안의 당’인 파벌들이 교대로 총리를 맡음으로써 정권교체와 같은 역할을 해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가능했다는 견해도 있다.

1994년에도 자민당은 파벌 해산을 선언했다. 처음으로 정권을 내주고 야당이 되자 내놓은 궁여지책이었다. 최근 자민당의 지지율이 14.6%로 급락했다. 1960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국민은 파벌 해산을 앞세운 자민당의 반성을 믿지 않는 듯하다. 최근 한 일본 신문의 칼럼 마지막 구절이다. “회계 책임자에게만 잘못을 떠넘기고 자신의 책임을 모르는 척하는 자들은 정치인의 간판을 내려줬으면 한다.” 우리 정치인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