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개발, 21세기 대항해시대의 주역이 되려면

KOTRA가 본
해외시장 트렌드

스페이스X·아마존 등 민간기업
위성발사 등 우주시대 선도 역할
국내도 민간참여 생태계 구축을
김태룡 실리콘밸리 무역관 차장
‘핵융합발전의 원료인 헬륨3를 달에서 채굴하고 저장한다. 저장된 헬륨3를 바탕으로 자원거래소를 운영해 수익을 창출한다’. 공상과학(SF)소설에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올해 3월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과 잠재 투자자와의 연결을 진행하면서 나온 내용이다.

내년이면 인류가 달에 도달한 지 어느덧 55주년을 맞이한다. 인류의 마지막 유인 달 탐사였던 1972년을 지나 냉전의 종식과 함께 잠시 주춤한 듯 보인 우주산업은 21세기에 들어서며 커다란 변화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민간의 참여다.2022년 기준 전 세계에서 로켓이 약 180회 발사됐다. 그리고 그중 3분의 1인 60회가 한 민간기업을 통해 발사됐고, 그 기업은 재사용 가능 추진체인 팰컨9을 앞세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였다.

현재 활동 중인 위성의 숫자를 보면 민간의 우주 사업 참여는 더 극적으로 나타난다. 스페이스X가 운용 중인 위성은 3395개로, 활동 중인 전 세계 위성의 약 50%를 차지한다. 유럽의 원웹(OneWeb)이 502개(7%), 중국 정부가 369개(5%), 미국 정부가 306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물론 발사체와 위성의 숫자만으로 우주산업의 주도권이 완전히 민간으로 넘어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관련 산업 대부분이 정부의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고 분야에 따라서 여전히 민간에게 제한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민간의 참여와 혁신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실리콘밸리에 근무하다 보니 그런 변화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북미 대표 스타트업 전시회인 테크크런치 디스럽트에는 올해 스페이스 전시관이 등장했고 지난달 아마존도 자체 위성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리며 우주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대기권 밖으로의 진출만이 아니라 반대로 우주개발 과정에서 개발된 다양한 기술의 민간 이전을 통해 스스로 재생하는 타이어, 온도를 조절하는 의류 등 획기적인 아이템을 생산하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며 우리의 일상을 바꿀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민간 우주산업의 발전이 순수하게 자생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민간의 우주산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NASA가 제창한 LEO(Low Earth Orbit) 이코노미 개념이 있다. 상업적 우주 개발, 민간 기술이전 프로그램들은 15~17세기 대항해시대 국가들이 추진한 탐험 장려 정책을 연상시킨다. 대항해시대 서두를 장식한 주요 탐험가는 기사 또는 군인이었으나 탐험을 경제적인 성과로 이끈 것이 현대 주식회사의 선조 격인 유럽의 동인도 회사들이었던 것처럼 새로운 탐험의 시대, 경제적 결실을 얻어내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같은 민간 기업의 활동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스타링크 역할에서 볼 수 있듯이 거대 민간 우주기업은 더 이상 SF가 아니라 현실이다. 한국에서도 우주산업에 대한 정부·민간 모두의 관심이 높아졌고 누리호의 발사 성공 등 괄목할 만한 성과도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말미, 결실을 가장 많이 가져간 국가는 선두 주자였던 스페인, 포르투갈이 아니라 후발주자인 영국과 네덜란드였다. 그 밑바탕에는 민간의 역동성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민간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국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우리도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