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인구 변화와 가사 로봇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요즘 전 세계에 로봇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테슬라가 개발한 ‘옵티머스’는 해를 거듭할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구글 딥마인드와 공동 개발해 공개한 로봇 ‘모바일 알로하’는 요리, 식기 세척, 세탁, 청소 등을 놀라울 정도로 잘 수행한다. 이런 획기적인 발전 과정을 보고 있자니 이제 인간이 가사 노동에서 벗어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에게 로봇의 등장은 경제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경제학은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한정 자원은 시간이다. 모두에게 매일 24시간이 주어진다. 이를 쪼개서 일하고 여가도 누려야 하니, 자본주의 체계에서 시간의 제약은 누구나 넘고 싶은 장애물이다.인류가 시간 제약에서 본격적으로 벗어난 것은 소위 2차 산업혁명의 기술 혁신에서 시작됐다. 20세기 초 전기에너지 덕분에 등장한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 가전기기는 가사 노동의 불편을 개선하고 가사 노동 시간을 현저히 줄였다. 시간 절감의 경제적 파급은 매우 컸다. 여성들은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고, 가사 노동이 줄어든 만큼 여가는 증가했다. 기술로 시간 제약을 극복하면서 삶의 질이 달라진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인류 삶의 질은 크게 개선됐지만, 인간은 여전히 시간의 굴레 속에 살고 있다. 최근의 로봇 개발 경쟁은 인공지능(AI) 기술에 기반, 시간 제약을 넘어 인류 삶의 질을 상상 이상으로 높이기 위한 원대한 도전이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미국 CES에서 선보인 각종 AI 기반 가사 로봇은 가사의 전자동을 꿈꾸게끔 했다. 삼성의 최신 AI 휴대폰은 외국어 학습에 투자할 시간, 회의 내용을 정리할 시간도 아껴준다.

국가 정책에서도 AI와 로봇 기술의 역할은 중요하다. 반도체와 같은 최첨단 기술에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국가가 직면한 사회문제의 효율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올해 노인 인구 1000만 명을 넘기며 급격한 인구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 결과 요양과 돌봄이 필요한 노인 인구는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을 돌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크다. 최근 추계에 따르면 2031년에는 돌봄 관련 인력이 50만 명 이상 부족할 전망이다.

스탠퍼드대와 구글이 개발한 가사 로봇의 성능을 보니 당장 가정집에서 활용하기에는 가성비가 낮지만 요양시설 등에서 활용하면 매우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급격한 인구 변화를 경험하는 한국에서 이만큼 필요한 기술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전 세계가 인구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으니 글로벌 시장에서도 분명 주목받을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