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성지 서소문에서 조우한 '반가사유상'과 '피에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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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이후창 초대전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받던 곳인 서소문 옛 성지 터. 그곳에 세워진 서소문역사박물관의 지하로 내려가면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 그가 미처 쓰지 못한 채 죽은 곡인 레퀴엠 d단조 K.626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성스럽기도, 어딘가 공포스럽기도 한 곡조의 출처를 찾아 따라가 보면 휴대폰 플래시를 켜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든 깜깜한 극장 하나가 나타난다.
‘형상과 현상, 성스러움에 대하여’ 2월 4일까지
무대 위, 모차르트의 진혼곡에 맞춰 빙글빙글 돌며 언제, 어떻게 올 지 모를 관객을 기다리는 건 조각상이다. 주인공의 모습을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면 그 형태도 어딘가 익숙하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끌어안은 채 오열하는 조각상. 미켈란젤로의 1499년 작품 ‘피에타’의 모습이다.하지만 바티칸 대신 서소문에 놓인 피에타는 단순한 재현작이 아니다. 그만의 독창성과 신선함으로 무장했다.
형상과 현상-피에타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 속 예수의 몸은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도 눈이 부시게 빛난다. 비밀은 황금색의 반사 유리. 작가가 직접 유리를 조각내 붙여 만들었다.금박이 아닌 유리라는 소재의 특성상 빛을 조금만 받아도 반사되고, 조각 하나 하나 반사된 빛은 마치 미러볼같은 무대효과처럼 어두운 무대를 밝힌다. 반대로 그를 안아들고 있는 성모마리아는 새까만 흑연을 사용해 표현하며 삶과 죽음의 대조를 드러낸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새해 기념 기획전으로 열리고 있는 조각가 이후창의 ‘형상과 현상, 성스러움에 대하여’에선 이 피에타만큼이나 상식을 깨는 독특한 유리 작품들 35여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후창은 유리와 금속, 빛을 이용해 독특하고 실험적인 작업을 펼치는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로 유명한 작가다. 인기 드라마 ‘호텔 델루나’와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등 다양한 작품 속 가면, 세트장 등의 제작총괄을 맡으며 해외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서소문성지박물관과는 지난해 동반 작가로 선정되면서부터 인연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관객의 허를 찌르는 작품들을 내놨다. ‘서소문 성지’라는 가톨릭의 역사로 가득찬 공간에 불상 조각과 12지신을 상징하는 유리 작품을 갖고 나온 것부터 그렇다.불상을 본따 만든 작품 ‘형상과 현상-우담바라’는 부처의 머리에서부터 뻗은 가지에서 3000년에 단 한 번 꽃을 피운다는 우담바라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부처 조각 위에 긴 유리조각을 설치했다. 유리 속에 조명을 넣어 그 조명이 매 순간마다 색을 바꾼다. 3000년이 아닌 3초에 한 번 꽃을 피우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바로 옆에는 색색의 유리와 스테인레스를 섞은 조각 ‘12지신 오벨리스크’가 놓였다. 이 작품의 유리 속에도 조명을 넣어 시간에 따라 그 색이 변하는데, 작가는 아무리 유리 색깔이 변한다 해도 그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성스럽고 경건하지만 때론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물음표를 자아내게 만드는 그의 유리조각 이야기는 2월 4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