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정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다면?..인식의 지배자 '알고리즘' [WSJ 서평]

필터월드(Filterworld)
카일 체이카 지음
더블데이 북스
304쪽│28달러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머릿속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기술이 하나 있다. 바로 '알고리즘'이다. 수학적 정밀성과 인간의 심리, 의사결정 구조 등이 복잡하게 결합돼 빚어진 알고리즘은 인터넷에 의존하는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카일 체이카의 <필터월드>는 알고리즘이 마치 신처럼 우리가 스스로 내린다고 믿는 결정에 대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제목인 '필터월드'는 인스타그램의 사진 편집 도구인 '필터'에서 가져왔다.
인터넷 세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각종 SNS, 온라인 광고 등은 우리에게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우리는 손끝 움직임 몇번을 통해 구매할 제품, 들을 음악, 영화와 책, 뉴스 등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소비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목록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체이카는 우리가 누린다고 믿는 자유는 '환상'이라고 지적한다. 어디에 클릭하고 '좋아요'를 누르는가에 따라 어느새 관련 광고나 콘텐츠가 연달아 뜬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알고리즘이 큐레이션이라는 명분으로 우리가 보게 되는 뉴스 헤드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재생하는 음악, 웹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광고 등에 영향을 미쳐 선택 능력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한다.알고리즘은 인간으로 하여금 독창성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등 알고리즘이 강제로 제공하는 큐레이션에 의해 우리는 새롭고 낯선 것을 만날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메타나 엑스(X) 등의 대기업이 알고리즘을 무기로 인터넷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이른바 '디지털 봉건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많은 이용자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는 앱은 인간의 의사 결정 과정에 필요한 판단력을 앗아가기도 한다. 알고리즘이 합리적 판단력을 장악한 사례 중 하나는 미국의 대표 지도 앱 중 하나인 웨이즈(Waze) 사례다. 이 앱은 운전자들에게 더 빠른 샛길을 안내했지만, 앱의 안내를 받은 차량들이 좁은 도로에 몰리면서 로스앤젤레스 전체 교통을 뒤흔든 바 있다.
저자는 알고리즘이 "문화를 평준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뉴욕과 독일 베를린, 일본 도쿄 등지에 등장한 이른바 '힙스터 커피숍'은 인스타그램 등 SNS 알고리즘에 올라타 '멋쟁이'가 되고 싶은 소비자를 끌어들인다. 이들은 진정성보다는 디지털 이미지로 소비되는 데 최적화된 디자인과 경험을 제공하는 데 그친다. 체이카는 알고리즘에 의해 우리의 '진짜' 오프라인 생활이 인스타그램의 먹잇감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점점 의사결정 능력을 포기함으로써 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다움을 포기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내놓는다.저자는 패스트푸드 세상을 역행하는 '슬로우 푸드 운동'처럼, 디지털과 알고리즘 세상에서도 '오프라인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소 추상적이고 엉뚱하긴 하지만 설득력은 있다. 우리의 우선순위를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디지털 플랫폼 공간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물리적 세계로 옮긴다면 더 나은 문화와 커뮤니티,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희박한 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리=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이 글은 WSJ에 실린 타라 이자벨라 버튼의 서평(2024년 1월 19일) 'Filterworld Review: Living for the ’Gram'을 번역·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