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추한 일터에 귀한 자아까지 함께 다닐 필요없다"는 문장에서 시작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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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지영 인터뷰‘누추한 일터에 귀한 자아까지 데리고 다닐 필요는 없다.’
기발함과 다정함이 공존하는
소설집 '테레사의 오리무중' 출간
"'왜 저래?' 싶은 주인공에게
정 붙이는 얘기가 재밌죠"
"애써 다정한 쪽으로 씁니다"
소설가 박지영의 머릿속에 불현듯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지난해 도서관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다 소설을 청탁받은 뒤였다.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일에 치여 소설에 대해 생각할 수가 없었고, 마음만 복잡해졌다. 급박한 순간에 떠오른 문장 하나는 단편 소설 ‘테레사의 오리무중’의 뼈대가 되어 줬다. 소설은 자신의 자아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여성 테레사를 다룬다. 테레사는 자신의 자아를 펫캠(반려동물 관찰용 카메라)으로 지켜본다. 자아는 테레사의 기대처럼 위대한 일을 해내는 대신에 유튜브나 보고 앉아 있다. 테레사에겐 한숨을, 독자에겐 웃음을 자아낸다. 이후 잠적한 자아를 찾아헤매는 과정에서 테레사는 직장상사 ‘주경’과 예상치 못한 우정을 쌓는다.
기발함과 다정함이 공존하는 소설을 쓰는 박지영 작가의 신간 소설집 <테레사의 오리무중>이 최근 출간됐다. 등장인물을 공유하는 세 편의 연작소설을 담은 소설집이다. 지난 25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때면 글 쓰는 자아에 대해 설명 잘하는 자아를 소환하고 싶다”며 웃었다.
박 작가는 요즘도 “주말에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는 자아와 평일에 글 쓰는 자아를 오가며 지내는 중”이다. 2010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장편소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을 발표한 이후 9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한동안 단편 청탁이 없었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며 쓰고 싶은 이야기를 쌓아갔다. 그는 최근 들어 <고독사 워크숍>(2022) <이달의 이웃비>(2023) <테레사의 오리무중>(2024) 등 매년 책을 출간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2022년 김유정문학상을 받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 현대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전작 <이달의 이웃비>까지만 해도 제 스스로가 문학이 고용한 단기계약직에 머물러 있단 생각을 했어요. 점차 시간이 지나고 이번 책부터는 ‘어떻게든 계속 소설을 쓸 수 있겠다, 무기계약직 전환을 약속 받은 2년 기간제 소설가 상태는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제 소설은 결국 <고독사 워크숍>의 변주”라는 그의 자평대로 박지영 소설의 특징은 ‘고독사가 예정된 것 같은’ 외로운 인물들이 이웃을 만나며 소소한 다정함을 나누게 된다는 것. 이번 책에 수록된 ‘테레사의 오리무중’ ‘올드 레이디 버드’ ‘장례 세일’ 세 편의 소설에서는 모두 단기계약직을 전전하며 고독한 인물이 나오지만 그들에게도 이웃이나 친구가 있다. ‘올드 레이디 버드’에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해피엔딩이 아닌 건 참을 수 없어요.” 마치 박 작가가 하는 말 같다.
박 작가는 그러나 “저는 해피엔딩이 아닌 걸 사실은 참을 수 있는 사람인데, 애써 낙관과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쪽”이라고 말했다. 그의 소설 대부분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요구하는 일인칭 대신에 삼인칭 화자를 택한다. 그는 “누가 봐도 정이 가는 인물보다는 ‘왜 저래?’ 싶은 주인공을 점차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의 소설은 시니컬하고 위악적인 농담을 구사하다가도 소설 속 인물들에게 다정함을 잊지 않는다. “공평한 시선을 나눠주기 위해” 스쳐가는 인물에게도 이름을 부여하고, 자신의 다른 소설에서 나왔던 인물을 다른 소설에 다시 등장시키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따라 읽어온 독자라면 익숙한 이름에 반가움을 느끼게 된다. 그는 “고독과 이웃은 제게 제일 절박한 주제”라며 “독자에게 환하고 다정한 게 아니면 대체 내가 뭘 줄 수 있지? 자문해보곤 한다”고 했다.
“소설을 구상하는 시간이 제일 재밌다”는 박 작가는 내년께 장편과 경장편 소설을 각각 출간할 예정이다. 그 사이에 쓸 단편도 한창 준비 중이다. 그는 “9년간 책 한 권 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깨닫는 시간을 보냈다”며 “앞으로는 1년에 1권씩은 꾸준히 책을 내고 싶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