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오른 日 증시, ESG에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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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증시가 부활하고 있다. 버블 붕괴 이후 34년 만에 닛케이 지수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일본 상장사들의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과 지배구조 개선이 부활의 비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증권거래소는 PBR이 1배를 밑도는 상장사에 구체적인 개선 계획을 요구하기도 한다[한경ESG] 투자 트렌드지난 1월 일본 증시를 대표하는 니케이지수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지난 1월 22일 장중 한때 1990년 이후 가장 높은 주가 지수를 기록했다. 버블이 꺼지면서 무너져내린 증시가 34년 만에 회복된 셈이다. ‘일본의 부활을 알렸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실제 시가총액으로 중국 상하이증시를 제치고 3년 6개월 만에 아시아 1위를 되찾았다. 이를 두고 일본 정부가 투자 차익에 일정 기간 세금을 물리지 않는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를 대폭 확대하는 등 규제를 완화한 것이 적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 상장사의 주주환원 정책과 지배구조 개선이 큰 역할을 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본 증시를 날아오르게 한 비결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있었던 만큼 투자자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 재팬 뒤엔 주주환원 빛났다
주식시장의 핵심 투자군인 외국인 투자자들이 ‘바이 재팬(Buy Japan)’에 뛰어든 것은 엔저·실적·정책 3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제출하지 않은 기업 명단을 공개하며, 적극적인 주주 친화 정책을 시행하도록 압박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도쿄·오사카증권거래소를 운영하는 일본거래소그룹(JPX)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를 밑도는 상장사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공시하고 시행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PBR이 1배 이하인 기업은 자산가치보다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당시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도쿄증시 상장사 약 1800개를 분석한 결과 PBR이 1배 미만인 기업의 비율은 44%에 달한다.
증권업계는 ESG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내다본다. 신한투자증권은 일본 증시가 신고가를 기록한 이유에 대해 “통화 완화 정책과 거래소 개편 등 정부의 증시 부양 노력과 행동주의 펀드의 적극적 주주환원 독려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에는 JPX 프라임지수를 새롭게 선보였다.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으로 종목을 엄선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가 주주 입장에서 기업가치 창출을 기반으로 한 대표 지수를 도입하면서 체질 개선을 이루려는 의지를 반영했다”고 봤다.
실제 같은 달 일본 기업들이 발표한 자사주 매입 계획이 월간 기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주도한 주주환원 정책 덕분에 일본 기업의 ROE(9.1%)는 한국 기업(8.6%)보다 높아졌다”며 “일본 기업의 배당 성향도 33.6%로, 한국의 23.8%보다 높아져 일본 기업의 배당수익률은 2.2%가 넘는다”고 분석했다.행동주의가 일본 상장사들을 움직였다는 분석도 있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023년 1월 1일~2024년 1월 16일 기간 중 행동주의 캠페인의 표적이 된 일본 기업 수는 99개로, 이 중 11개 기업에 대한 캠페인이 종료됐다”며 “종료된 것을 포함해 표적 기업의 평균 보유 기간은 177일이며, 이 기간의 보유 수익률은 24.11%였다”고 소개했다.
日 펀드로 뭉칫돈…수익률 높은 펀드는?
ESG를 장착한 호재에 일본 투자상품에 뭉칫돈이 유입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일본 관련 펀드에 올 들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1118억원이 유입됐다. 북미 지역을 제외하고 글로벌 국가 중 가장 많은 자금이 몰렸다. 지난 5년간 총 1000억원이 빠져나간 것과 대조된다. 수익률도 압도적이다. 일본 펀드의 1년 수익률은 37.29%로, 북미 펀드(49.15%)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미국 증시가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사상 최고가 행진을 펼쳐온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과라는 분석이다.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인 한국투자ACE일본레버리지의 경우 1년 수익률이 81.41%에 달했다. 니케이지수를 추종하는 KB스타재팬인덱스펀드도 지난 1년간 41.61%의 수익을 내며 레버리지 펀드를 제외하곤 가장 수익률이 높았다. 일본 중소형주에 집중 투자하는 삼성일본중소FOCUS의 경우 같은 기간 수익률이 14.75%에 불과했다. 대형주 위주로 성과가 나타난 결과다.
일본 배당 ETF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정빈 연구원은 “일본 ETF 중에서도 고배당 유형일수록 성과와 리스크 지표가 우수했으며, 밸류에이션은 비싸지 않고 테크니컬과 센티먼트 지표는 긍정적”이라며 “지수 자체도 강세였지만, 그 이상 상승하고 있어 이것이 여전히 일본 배당 ETF를 선호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일본 증시의 경우 상장된 주식형 ETF가 100개 남짓이지만, 100주 단위 매매 제한이 있는 일본 주식에 비해 단주 매매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엔화 약세로 환전 타이밍이 나쁘지 않다는 점과 향후 일본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가시화될 경우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는 설명이다.
“단기 되돌림은 주의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주주 친화적인 일본 시장을 당분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저금리 상황에서 주식이 채권보다 여전히 비교우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원은 “제로 금리인 일본 자산시장에서 일본 주식의 매력은 상당하다”며 “일본 주식시장 내부적으로는 PBR이 1배 내외이면서 인플레 국면에서 강한 해운·증권·자동차·상사 등 업종 주가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또 “국내 주식시장과 달리 재평가(re-rating)가 진행 중”이라며 “일본 증시 강세가 좀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일본의 대미 수출이 구조적으로 대중 수출 규모를 넘어선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대미 수출을 주도하는 일본 자동차·반도체·기계산업에 대한 관심이 유효하다”며 “국내 주식시장에도 유사하거나 관련이 높은 업종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전망”이라고 했다. 다만 이미 가파르게 오른 증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보내기도 한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니케이지수의 12개월 선행 PER이 20.4배로, 미국보다 높아진 상황”이라며 “엔달러 환율도 146엔까지 높아진 만큼 일본은행(BOJ)의 구두 개입도 단기적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는 “단기 상승세는 둔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3~4월 춘계투쟁 기간을 앞두고 일시적 되돌림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재원 한국경제신문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