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과 글쓰기를 함께 해야했던 女 작가들은 어떻게 책상에 앉아있었을까

[arte] 최윤경의 탐나는 책
메이슨 커리, 이미정 옮김, 걷는나무, 2020

노벨문학상 작가도 피해갈 수 없는 시간 관리의 어려움
ⓒunsplash
새해에는 좀 더 열심히 읽고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편집자라면 으레 많이 읽고 쓸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읽고 싶은 책보다는 원고나 참고자료 읽는 일이 훨씬 많고, 보도자료나 표지문안 외에는 완성된 글을 쓰는 일이 드물다. 한 달에 한 번 연재하는 칼럼 마감하기도 버겁다 보니, 자연스레 기승전결이 잘 짜인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게 되었달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집이건 사무실이건 책에 둘러싸여 사는 내가 읽고 쓰는 습관을 들이는 일이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눈 뜨면 출근하기 바쁘고 퇴근 후에는 이런저런 집안일로 하루가 저무는 직장인에게는 좀처럼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책 읽을 시간은 없어도 유튜브와 SNS는 꼭 챙겨보는 것이 21세기 디지털 인간 아니던가. 어떻게 하면 회사 일과 집안일 틈새로 흘러내리는 시간을 그러모아 읽고 쓰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들 때는 나와 비슷한 생활을 했던 사람들, 말하자면 ‘워킹맘 선배님들’이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테다. 작가 메이슨 커리는 <예술하는 습관>에서 집안일과 창작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던 여성 작가들의 하루 루틴과 작업 습관을 살펴보며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쉴 새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다한 일들 때문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다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도리스 레싱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도리스 레싱은 “이것저것 하고 싶은 열렬한 욕구―‘그걸 사야 하고, 아무개에게 전화를 해야 하고, 이건 잊으면 안 되고, 저건 기록해 둬야 해’라고 말하는 주부의 열병-를 억누르고 글쓰기에 필요한 단조롭고 무난한 마음 상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리스 레싱
수시로 울리는 알림과 메시지에 눈길을 빼앗긴다면? 미국의 사회운동가인 앨리너 루스벨트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동요하지 않고 일하는 것”을 시간활용의 첫 번째로 꼽았다. 두 번째는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고, 셋째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활동을 할당하는 것. 예기치 못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두어야 한다는 팁도 잊지 않는다.무수한 유혹을 이겨내고 어찌어찌 책상 앞에 앉았더라도, 텅 빈 화면을 마주한 채 키보드만 만지작거리거나 애꿎은 펜 돌리기만 반복하고 있다면, ‘뭐라고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쓰고 싶은 기분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나는 작가 해리엇 마티노의 말에 더 마음이 간다. 최초의 여성 저널리스트로 언급되기도 하는 해리엇 마티노는 “자리에 앉은 첫 25분은 무조건 쓰라”고 조언했다. 예열의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일단 쓰기 시작했다면 멈추지 말고 아무 말이든 쓰는 편이 도움이 된다는 것.
ⓒunsplash
그러니까 한마디로 ‘진짜로 쓰고 싶고 써야 한다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쓰라’는 말이다. 간절함의 정도가 우선순위를 바꾸고, 없던 시간도 만들어내게 할 테니. 극악의 조건에서도 쓰지 않으면 살아낼 수 없었던 많은 여성 작가들의 삶이 그것을 증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