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한승의 12년 결실…삼성에피스 최단기 매출 1조 달성

CDMO·진단 제외 순수 제약·바이오社 중 가장 빠른 1조 달성
설립 12년만에 1조…셀트 18년, 한미 46년, 유한 89년 걸려
휴미라 시밀러도 미국 1위 달성, 후속 먹거리 개발 박차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캠퍼스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 4공장 준공식. 왼쪽부터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 이재용 회장,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등. 삼성전자 제공
삼성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창립 12년만에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기업을 제외한 순수 제약·바이오업계에서 최단기 기록을 세운 것이다. 지난달엔 연간 23조원 시장으로 알려진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의 미국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순수 제약바이오업계 최단기 1조 달성

지난 2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23년 실적 발표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2023년 연간 기준 매출은 1조 203억원, 영업이익은 2054억원을 기록하며 2012년 2월 창립 이후 12년만에 처음으로 연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CDMO나 진단키트 기업을 제외하면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선 셀트리온, 유한양행, GC녹십자, 종근당, 한미약품, 대웅제약, 동아쏘시오홀딩스, 광동제약 등에 이어 9번째로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한 것이다.12년만에 1조원 달성도 신기록이다. 창립 후 연매출 1조원을 달성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셀트리온은 18년, 한미약품은 46년, GC녹십자 49년, 광동제약 54년, 대웅제약 74년, 종근당 79년, 유한양행 89년, 동아쏘시오홀딩스 91년 등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9년 흑자 전환 이후 4년 만에 이룬 쾌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막대한 임상비용과 연구개발(R&D) 비용이 투입돼야 하는 초기 바이오시밀러 개발기업의 특성상 이같은 수익성을 단기간내에 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에는 일회성 마일스톤(연구개발 수수료) 감소에도 불구하고 제품 판매 증가로 의미있는 실적을 기록하며 기존의 개발 회사에서 제품 판매 회사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는 분석이다.


애브비 철통 방어 속 미국 휴미라 시밀러 첫 1위 달성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월간 기준 점유율에서 지난달 미국 '휴미라'시밀러 시장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12월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처방실적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제품명 하드리마)가 시밀러업계 1위를 차지했다. 하드리마는 12월 미국 시장점유율 0.8%를 기록해 2위 미국 암젠(암젠비타, 0.7%)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3위는 스위스 산도스(하이리모즈), 4위는 미국 코헤러스(유심리)가 차지했고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실테조), 인도 바이오콘(훌리오)가 뒤를 이었다. 아직 시장점유율은 미미하지만 바이오시밀러 업계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오리지널 제약사 애브비의 아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_하드리마
가격 경쟁이 붙으면서 연간 23조원이던 시장 규모는 지난해 18조원 규모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휴미라의 매출 역시 타격을 입어 37%가량 줄 것이란 전망이다.
애브비는 휴미라를 통해 시장점유율 97%로 시장 수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방어를 위해 막대한 리베이트 비용을 지출하면서 상당한 수익 감소가 예상된다. 시간이 갈수록 점유율은 더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밀러업계 관계자는 "미국 의사들이 처방전을 쓸 때, 행정 절차적 복잡성 때문에 관성적으로 기존 처방(휴미라)을 그대로 내는 사례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고 있다"며 "미국의 보험사 가운데 시밀러만을 취급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근까지 미국 내 PBM 등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1위에 올라설 수 있었던 비결은 차별화된 가격 전략 덕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시밀러업체들은 미국 내 판로를 책임진 보험사(PBM)에 더 많은 리베이트를 주기 위해 오리지널 대비 할인율은 낮춘 '고가'전략을 취했다. 하지만 애브비 역시 비슷한 '맞불'전략으로 맞서면서 큰 효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경우 거꾸로 리베이트 비용 지불은 낮고 오리지널 대비 할인율은 높인 '저가'전략으로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다.

뼈속까지 '파란' 삼성DNA 고한승 사장의 뚝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블록버스터 바이오시밀러 7종을 판매중이다. 2012년 창립 후 2016년에 첫 번째 제품 허가를 획득했으며 12년 간 자가면역·종양·안과·혈액학 분야 총 7종의 바이오시밀러의 판매 허가를 받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빠른 성과 배경에는 창립 후 12년 동안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지킨 고한승 사장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고한승 사장은 대표에 오르기 전 10여년 간 삼성종합기술원 바이오헬스랩장, 삼성 신사업팀 담당 임원을 맡으면서 삼성그룹 바이오의 초석을 다졌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유전공학 분야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바이오벤처 타겟퀘스트, 나스닥 상장사 다이액스 등을 거치면서 전문성과 해외 인맥을 갖췄다는 평가다. 오랜 기간 삼성에 몸담아 오너 경영진 등과 함께 호흡해오면서 '파란피'로 상징되는 삼성의 DNA를 갖춘 몇 안되는 CEO로 꼽힌다. 때문에 삼성의 바이오 전략 수립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 바이오업계를 대표하는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직도 수행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9년 영업이익 1228억원을 내며 창립 8년 만에 첫 흑자를 기록했으며 같은 해 매출액은 7659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매출액은 2020년 7774억원, 2021년 8470억원, 2022년 9463억원를 기록하며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후속 파이프라인 3종과 미래 먹거리에 거는 기대

삼성바이오에피스은 후속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 3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오리지널 의약품 연간 매출 규모는 30조원 수준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19일, 혈액학 분야의 난치성 희귀질환 치료제인 에피스클리에 대한 식약처 허가를 받으며 다양한 치료 영역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후속 파이프라인 3종(SB15·아일리아 시밀러, SB16·프롤리아 시밀러, SB17·스텔라라 시밀러)도 임상 3상이 완료됐다. SB15의 오리지널 의약품인 아일리아의 경우 연간 매출액 규모가 약 12조원에 달하며 SB16의 오리지널 의약품인 프롤리아와 SB17의 오리지널 의약품인 스텔라라 또한 각각 연간 매출액 규모가 약 5조원, 13조원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미 항체 바이오의약품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선점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및 항암제 등의 제품으로 수천억원의 매출 성과를 올리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후속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 시장 진출을 통한 매출 확대도 기대된다.삼성바이오에피스는 현재 항체·약물접합체(ADC), 유전자 치료제 등 차세대 바이오 기술에 대한 연구를 통해 미래먹거리 발굴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내 바이오 기업 '인투셀'과 ADC 분야의 개발 후보물질 검증을 위한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함께 조성한 '라이프사이언스 펀드' 를 통해 국내외 유망 바이오 벤처 기업에 대한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