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 중동위기로 '고통'…공급망 혼란에 인플레 압력

WSJ "코로나 때와 비슷한 악몽 반복 가능성은 낮아"
유럽 경제가 중동 위기로 촉발된 공급망 혼란에 따른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운임이 급등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다행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와 비슷한 악몽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데이터 제공업체 S&P 글로벌에 따르면 유로존의 공급 시간 측정치(measure of supply times)는 지난달 53.2에서 이달 48.6으로 떨어졌다.

상품 공급에 걸리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짐을 의미하는 50 이하는 1년여 만에 처음이다. 특히 영국이 51.3에서 43.1로 하락해 홍해발 물류 대란의 악영향이 심각했다.

앞서 테슬라와 볼보 유럽공장이 홍해 사태에 따른 부품 수급 차질로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피해가 광범위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통계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예멘 반군 후티가 수에즈운하와 연결된 홍해에서 민간 선박들을 무차별 공격하자 많은 화물선이 안전하지만 더 오래 걸리고 연료비도 많이 드는 남아공 희망봉으로 우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티가 공습을 강화하면서 운임은 치솟고 있다.

프레이토스 발틱운임지수에 따르면 컨테이너를 통한 상품 운송 평균 비용은 지난달 22일부터 지난 19일까지 전 세계적으로 두 배 넘게 올랐다.

중국-유럽 노선의 상승폭은 더 가팔랐다. 아시아와 무역의 40%를 홍해 루트에 의존하는 유럽과 달리 미국은 의존도가 높지 않아 홍해 사태의 영향을 덜 받는다.

하지만, 중앙아메리카의 가뭄으로 글로벌 물류의 또 다른 관문인 파나마운하의 물동량이 감소했다.

인도에서 미국 동부 해안으로 향하는 화물 가운데 희망봉을 돌아가는 비중이 증가함을 의미한다.

상황은 2020~2021년 글로벌 공급망 위기 때보다 덜 심각하지만 문제는 시기다.

중국 공장들은 보통 다음달 춘제(春節·중국의 설) 전에 수출품들을 해외로 몰아서 보내기 때문이다.

글로벌 물류 플랫폼 플렉스포트의 라이언 피터슨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2~3주는 큰 운송 시즌"이라며 "중국 공장들이 1~4주간 문을 닫기 때문에 수입업자들은 그 직전에 모든 것을 받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운송 비용이 고공행진을 하게 되면서 많은 소비재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커진다.

2020년 시작된 글로벌 공급망 혼란이 2021년 중반부터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이코노미스트들과 각국 중앙은행은 이번에도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JP모건은 이번 혼란이 상품 가격을 0.7% 올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글로벌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수치에 0.33%포인트를 더할 것으로 추산했다.

근원 CPI는 2년에 걸쳐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려온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를 시작하기에 안전한지 결론 내리기에 앞서 지켜볼 주요 척도다.

다만, 장기간 영향을 미친 3~4년 전 공급망 혼란에 따른 물가 상승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공급망 관리 회사 블루욘더의 앤 마리 존크먼 글로벌 산업 전략 분야 상무는 "시간이 흐르면서 (물류 대란이) 가격에 전가되는 걸 보겠지만, 2020년 시나리오는 예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