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클볼'이 뭐길래…실리콘밸리 CEO 부부, 불만 폭발한 이유 [최진석의 실리콘밸리 스토리]

사진 : 최진석 특파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프레시디오 월 파크’. 지난 23일(현지시간) 오전 찾아간 공원 내 체육시설에선 60여명의 사람이 피클볼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평일 오전 시간이었지만 피클볼 패들로 플라스틱 공을 치는 소리로 가득했다. 테니스와 탁구를 섞어놓은 듯한 피클볼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 미국의 ‘국민 스포츠’로 떠올랐다. 겉보기에 평화로운 피클볼 코트의 이면에 이용자들과 지역주민 간 갈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최근 이 동네에 사는 실리콘밸리 최고경영자(CEO) 부부가 피클볼 코트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코트는 총 두 개의 코트 중 주택가와 좀 더 가까운 한 곳이다. 이곳에선 10여명의 주민이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무료 레슨에 참가해 배우고 있었다. 이날 만난 피클볼 강사 메리 히키는 “공원은 공공의 것이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며 “누구도 이 피클볼 코트를 폐쇄하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피클볼 수업을 받고 있는 참가자들. 코트 너머로 주택들이 보인다. 사진 : 최진석 특파원
사건의 발단은 작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피클볼 코트 인근 주택에 거주하는 벤처투자자이자 IT 사업가인 칼 피터슨과 홀리 피터슨 부부는 “피콜볼 소음으로 일상생활이 위협받고 있다”며 시에 피클볼 코트 폐쇄를 요청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소유한 3600만달러짜리 주택을 매물로 내놨지만 팔리지 않고 있다”며 “피클볼 소음과 주변 주차 문제로 인해 2900만달러에도 매수 문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피클볼 강사인 리사 쇼(왼쪽)와 메리 히키. 이들은 3년째 이곳에서 피클볼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 최진석 특파원
이에 대해 히키는 “주말이면 200여명의 지역 주민들이 모여 피클볼을 즐긴다”며 “아름다운 숲과 멀리 골든게이트 브릿지까지 보이는 멋진 공원에서 여유롭게 피클볼 게임을 할 수 있는 멋진 권리를 박탈당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피클볼 강사인 리사 쇼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피클볼 게임을 통해 운동하고 교류하는 등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며 “지역 사회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공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피터슨 부부의 저택은 자체 피클볼 코트 시설을 갖추고 있다”며 “피클볼 소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집 안에 피클볼 코트를 갖고 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사진 : 최진석 특파원
이들은 소음과 주차 문제 등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피터슨 부부에게 연락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히키는 “저소음 라켓, 방음벽 등 여러 솔루션을 두고 대화하자고 연락했다”며 “하지만 그들은 연락받지 않은 채 오로지 피클볼을 멈추기만을 원한다”고 지적했다.피클볼 코트에서 만난 동네 주민 앤 키바는 “이곳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살고 있는데 피클볼로 인한 소음이 크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훌륭한 공원과 인접해 있어 주택의 가치가 높은 것인데 주민들의 공원 활용을 막으려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적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갈등의 중심에 있는 피클볼 코트.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자 시 측은 올 봄 이 코트를 폐쇄할 방침이다. 사진 : 최진석 특파원
피클볼 인구 증가에 맞춰 공원 내에 테니스 코트를 추가하고 운영 시간을 확대해온 시 측은 최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WSJ에 따르면 시 측은 지난해 피클볼 허용 시간을 오전 6시에서 오전 9시로 변경했고, 공원 주변에 있는 12개의 피클볼 코트 중 6개를 폐쇄하고 테니스 코트로만 사용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작년 10~11월에 피클볼 소음을 측정한 결과 평소(40데시벨)보다 큰 94데시벨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94데시벨은 헤어드라이어 소리와 맞먹는 수치다.
사진 : 최진석 특파원
시 측에선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자 한 차례 피클볼 네트를 걷어간 바 있다. 하지만 강사들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네트를 설치해 다시 운동하고 있다. 히키는 “오는 3월께 봄이 오면 시에서 테니스코트에 색칠된 피클볼 라인을 제거할 방침”이라며 “라인이 제거되면 우리들이 직접 바닥에 테이프로 라인을 그린 뒤 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공장소에서의 공공의 행복을 위한 평화적인 저항행동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레시디오 주택가에서 바라본 공원. 멀리 골든게이트 브리지가 보인다. 사진 : 최진석 특파원
1965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처음 등장한 피클볼은 코로나19 기간 국민 스포츠로 부상했다. 집 근처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고, 테니스보다 운동강도도 낮아 부상 위험도 적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만 500만명 정도가 피클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샌프란시스코=최진석 특파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