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츠베덴의 '직설화법'으로 싱싱한 연주…임윤찬 협연

25일 예술의전당…임윤찬, 곡 전체 입체감 고려해 베토벤 '황제' 해석
여기저기서 폭죽이 펑펑 터지는 듯한 재미있는 연주회였다. 2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3대 음악감독의 취임 연주회는 베토벤의 '황제' 협주곡과 말러의 교향곡 1번이라는 무게감 있는 프로그램을 츠베덴 감독 특유의 '직설 화법'과 넘치는 에너지로 작품을 싱싱하게 전달했다.

이미 여러 차례 합을 맞추며 서로를 알아 왔던 츠베덴과 서울시향은 그간의 공연들보다 확연히 나아진 호흡을 과시하며 앞으로를 기대하게 했다.

뜻깊은 자리에 초대받은 객원 연주자는 임윤찬이었다. 그는 명불허전의 연주로 서울시향과 츠베덴의 새 출발을 축하했다.
임윤찬이 1부에서 협연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베토벤, 아니 모든 피아노 협주곡 장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명작인 이 협주곡은 베토벤 당시의 틀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작품이다.

곡의 첫머리부터 시작되는 긴 피아노 독주, 피아노와 관현악이 하나로 맞물리는 구조, 낯선 조성으로 된 2악장 등이 그러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품의 '혁신'들이 이미 익숙해진 오늘날, 이 세 지점에서 색다르고도 설득력 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보통 '황제'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은 강렬하고 압도적인 제스처로 첫머리의 독주를 시작한다.

그러나 임윤찬은 오히려 점진적인 크레셴도(점점 세게)와 긴 호흡, 그만의 색다른 아티큘레이션으로 첫머리를 장식했다. 독주 부분을 조심스럽게 도입해 점차 세기를 더해 몰아가는 것은 연주 전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해석의 방향이었다.

이런 해석은 피아노 독주와 관현악이 하나의 음향적 일체를 이루도록 한 베토벤의 의도와 관련 있다.

임윤찬은 오케스트라가 점점 세게 음량을 늘려갈 때마다 똑같이 크레셴도를 구사하는 등 합주 부분에서 시종일관 악단과 일치된 셈여림을 구사했고, 솔로 악기들이 악상을 이끌 때는 곧바로 음량을 줄여서 오케스트라가 보다 선명하게 들리게끔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임윤찬은 피아노만이 아니라 전체 곡의 입체감을 선택했다.

공간을 듣고, 관객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상상하며, 절제력과 지배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여 전체 음악을 살려낸 것이다.

이러한 장면이 가장 인상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3악장 말미의 팀파니 독주 부분이었다.

다른 연주에서라면 그저 타악의 반주쯤으로 들렸을 이 부분이 말 그대로 팀파니가 독주를, 피아노가 반주하듯 연주됐다.

또 임윤찬은 전곡에 걸쳐 베토벤 음악 특유의 관성, 반복 시에 배가되는 양감(무게감), 2악장의 경우 강한 몰입과 긴 호흡에서 나오는 명상적 깊이까지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이러한 탁월함은 독주자가 자기 기량이나 자기 의도를 드러내기보다 작품 그 자체에 완전히 몰입할 때 나온다.

천재성과 더불어 작품에 헌신하는 정신을 지닌 임윤찬은 보다 높은 이상 아래 정진한다면 현재의 탁월성을 넘어 진정한 대가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향은 고전적이라기보다는 '댄디'한 사운드로 임윤찬의 피아노를 받쳤다.

현악의 집중력, 세세한 표현 등에서 확실히 향상된 면면이 느껴졌다.

특히 반주부에서도 빛깔을 달리하거나 특별한 질감을 가미하는 디테일한 부분이 돋보였다.
2부는 일명 '거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말러의 교향곡 1번으로 채워졌다.

츠베덴 감독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도 다채로운 '표정'을 지니는 현악 파트를 조련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듯했다.

또 악단 전체의 음향적 양감과 지속성, 밀도를 향상하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로 삼은 듯했다.

비록 여린 부분은 가다듬을 대목이 적지 않았지만, 에너지를 폭발시켜야 할 부분은 호쾌하고도 선명했다.

1악장과 4악장의 클라이맥스 부분의 강렬함, 2악장의 싱싱한 에너지 등이 츠베덴 특유의 추동력이 잘 드러난 부분이었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3악장의 느린 부분, 말러가 자신의 가곡 '내 사랑 그대의 푸른 두 눈'을 인용한 대목이었다.

목가적인 목관, 더없이 정감 어린 현악기군의 앙상블 등 이 부분만큼은 세계 최고의 말러 악단들의 명연에 견줄 만큼 훌륭했다.

전곡의 여러 부분이 다소 '직설적'으로 재현됐기에 이 부분의 다정한 내면성은 더 두드러지게 다가왔다.

현악뿐 아니라 목관 솔로 파트 또한 그 색채감과 명민함에서 좋은 연주를 들려줬다.

다만 1악장 첫머리의 '하모닉스' 음향이 지나치게 컸던 부분이나 트롬본 및 타악기가 너무 공격적으로 가세하여 음향적 균형이 순간순간 무너지는 부분 등은 개선해야 하고, 악장 전체의 셈여림 구조를 보다 설득력 있게 드러내야 하는 과제도 드러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듣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고무적인 것은 외향적인 효과 이면의 내면적 표현과 감성, 악상의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츠베덴과 서울시향의 동행은 어떤 결실을 맺게 될까. 기대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