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그림의 경계는 어디일까… 실제 풍경에 내 멋대로 색채를 입히다

[사진전 리뷰] 광주광역시 롯데갤러리 '로망스'
사진가 박현진, 흑백의 윤곽만 남은 사진에 자신만의 색을 칠해
사진 찍던 순간의 내 감정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을 수는 없을까?

사진가 박현진은 과거에 국내외 곳곳에서 찍었던 풍경 사진들을 보며, 촬영 당시 그곳에서 받았던 느낌이 사진에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 작가는 촬영자의 감정을 온전히 담을 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는 사진이 '디지털 파일'이라는 것을 떠올렸고, 이내 사진 파일에 담긴 색의 구성 요소들을 제거했다.
박현진 로망스 'spain-222'
작가는 흐릿한 흑백의 윤곽만 남은 사진에, 자신의 기억을 반영한 색채를 입히기 시작했다. 정교함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피사체의 원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한 채, 사물의 색만 바꾼 그 결과물들은 환상적이었다. 별도의 설명이 없으면, 여지없이 회화 작품으로 보였다. 풍경 사진에 자신의 '추억의 색채'를 입혀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박현진 로망스 'seville-211'
그 작품들로 꾸민 초대전 '로망스'가 광주광역시 롯데갤러리에서 개막했다. 오래된 주택 앞에 서 있는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와 그 뒤로 지나가는 사람. 스페인 세비야에서 촬영한 작품 'seville-211'은 붉고 노란 색이 풍성하다. 뜨거웠던 날씨와 정열적이었던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이런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박현진 로망스 'lisbon-211'
짙은 나무 한 그루, 그 뒤의 연두 빛 벽면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 파스텔로 그린 것처럼 보이는 'lisbon-211'은 포르투갈 리스본의 거리 사진에 당시 그곳에서 받았던 '청량감'을 입힌 것이다. 이렇게 작가 개인의 내면과 기억, 미적 감각 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로망스' 연작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 작업이다.
박현진 로망스 'st.malo-161'
박 작가는 "우리는 같은 사물을 마주하더라도, 개인의 심리 상태, 피사체와의 관계 등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며 "과거에 찍은 사진으로부터 내 마음속의 풍경을 추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광주에서의 '로망스'전은 지난해 서울과 프랑스 파리 전시에 이은 세번째 전시다. 올해 대전과 부산에서도 순회전이 이어질 예정이다.'로망스' 작품들은 오는 3월24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신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