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우주정거장 망가뜨린 악당…멸종의 용의자 '곰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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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가장 작고 은밀한 파괴자들2001년 러시아의 미르 우주정거장이 폐쇄됐다. 인류 최초의 우주정거장으로 수많은 우주선과 도킹하며 전 세계의 우주과학 실험실로 사용된 과학기술 개발의 최전선이었다. 우주에 머물던 미르 우주정거장을 남태평양 바닷속으로 떨어뜨린 건 어이없게도 ‘곰팡이’였다. 우주정거장 곳곳이 곰팡이로 뒤덮이자 우주 방사선으로 돌연변이 곰팡이가 생겨났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퍼졌다. 결국 러시아는 미르 우주정거장의 폐기를 결정했다.
에밀리 모노선 지음 / 김희봉 옮김
반니 / 328쪽│2만2000원
곰팡이 600만종이 사는 지구
곰팡이로 우주정거장 뒤덮이자
러시아, 태평양 바다에 빠뜨려
인간에 필요한 곰팡이 많지만
일부는 고위험군 감염병 유발
특정 동식물은 멸종까지 우려
여러 품종 재배 등 대응 필요
최근 국내 출간된 <곰팡이, 가장 작고 은밀한 파괴자들>은 개구리, 박쥐, 바나나 등 수많은 종을 멸종 위기에 빠뜨린 곰팡이를 해부하는 책이다. 곰팡이가 지구 최후의 팬데믹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저자는 독성학자이자 과학 작가인 에밀리 모노선으로, 코넬대에서 생화학독성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년 넘게 독성물질을 탐구해온 학자다.
지구상에는 적어도 600만 종의 곰팡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곰팡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하고 번성하고 있는 생명체다.” 대부분의 곰팡이 종은 식물, 동물,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사람의 내장과 피부에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사람 몸 안팎에서 활동하는 미생물 공동체의 일원이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우연과 관찰로 발견해 수많은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은 빵이나 오래된 멜론 껍질에서 생기는 곰팡이와 같은 종류다.하지만 어떤 곰팡이는 그렇지 않다. 죽어가는 생명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를 먹이로 삼는 곰팡이가 있다. 병원성 곰팡이는 생명을 빼앗는다. 커피, 바나나, 코코아의 멸종을 염려하는 기사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의자는 곰팡이다. 한 종이 멸종하거나 개체군이 사라지면 그 영향은 해당 종에서 끝나지 않는다. 책은 섬뜩하게 묻는다. “곰이나 새의 먹이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이미 곰팡이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2022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최초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곰팡이 목록을 발표했다. 곰팡이 19종에 대해 WHO는 “세계 공중 보건의 우려 사항 중 하나”라고 밝혔다.
2016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사망률 및 이환율 주간 보고서’에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감염증이 등장했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감염 환자의 30~60%가 사망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았고 약물치료에 내성을 보여 완치가 까다로웠다. 감염의 원인은 곰팡이 ‘칸디다 아우리스’였다. 당시 병원에서 사용하던 소독제로 이 곰팡이를 죽일 수 없었기 때문에 병원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병실 내부의 모든 것을 교체해야 했다.책은 곰팡이가 특정 종을 멸종시키는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인류의 움직임도 전한다. 2006년부터 노르웨이 스발바르에 있는 국제종자저장고에서는 전 세계 씨앗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북극에서 1120㎞쯤 떨어진 이곳은 ‘종말의 창고’로 불린다. 핵 전쟁이나 소행성 충돌,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식물 생태계 파괴 상황에서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질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는 한 번 자리 잡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숙주가 없는 환경 속에서 수십 년, 수백 년을 버틸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잠재적으로 해로운 곰팡이가 취약한 숙주를 만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잠재적으로 곰팡이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숙주로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최선의 대응책은 예방뿐이다. 동물 애호가는 자신의 집에 새로운 동물을 들일 때 야생 동물이 아니라 사육장에서 자란 동물인지 확인해야 하고, 여행할 때는 검역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단일 재배가 더 많은 인류를 효율적으로 먹여살릴 수 있는 방법일지라도 여러 품종의 바나나를 슈퍼마켓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은 여러 동식물 종의 서식지 손실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고 은밀한 적과 싸우려면 끈질기고 성실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책은 말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