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우주정거장 망가뜨린 악당…멸종의 용의자 '곰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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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19
곰팡이, 가장 작고 은밀한 파괴자들
에밀리 모노선 지음 / 김희봉 옮김
반니 / 328쪽│2만2000원
곰팡이 600만종이 사는 지구
곰팡이로 우주정거장 뒤덮이자
러시아, 태평양 바다에 빠뜨려
인간에 필요한 곰팡이 많지만
일부는 고위험군 감염병 유발
특정 동식물은 멸종까지 우려
여러 품종 재배 등 대응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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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출간된 <곰팡이, 가장 작고 은밀한 파괴자들>은 개구리, 박쥐, 바나나 등 수많은 종을 멸종 위기에 빠뜨린 곰팡이를 해부하는 책이다. 곰팡이가 지구 최후의 팬데믹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저자는 독성학자이자 과학 작가인 에밀리 모노선으로, 코넬대에서 생화학독성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년 넘게 독성물질을 탐구해온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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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곰팡이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2022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최초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곰팡이 목록을 발표했다. 곰팡이 19종에 대해 WHO는 “세계 공중 보건의 우려 사항 중 하나”라고 밝혔다.
2016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사망률 및 이환율 주간 보고서’에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감염증이 등장했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감염 환자의 30~60%가 사망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았고 약물치료에 내성을 보여 완치가 까다로웠다. 감염의 원인은 곰팡이 ‘칸디다 아우리스’였다. 당시 병원에서 사용하던 소독제로 이 곰팡이를 죽일 수 없었기 때문에 병원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병실 내부의 모든 것을 교체해야 했다.책은 곰팡이가 특정 종을 멸종시키는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인류의 움직임도 전한다. 2006년부터 노르웨이 스발바르에 있는 국제종자저장고에서는 전 세계 씨앗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북극에서 1120㎞쯤 떨어진 이곳은 ‘종말의 창고’로 불린다. 핵 전쟁이나 소행성 충돌,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식물 생태계 파괴 상황에서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질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는 한 번 자리 잡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숙주가 없는 환경 속에서 수십 년, 수백 년을 버틸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잠재적으로 해로운 곰팡이가 취약한 숙주를 만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잠재적으로 곰팡이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숙주로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최선의 대응책은 예방뿐이다. 동물 애호가는 자신의 집에 새로운 동물을 들일 때 야생 동물이 아니라 사육장에서 자란 동물인지 확인해야 하고, 여행할 때는 검역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단일 재배가 더 많은 인류를 효율적으로 먹여살릴 수 있는 방법일지라도 여러 품종의 바나나를 슈퍼마켓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은 여러 동식물 종의 서식지 손실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고 은밀한 적과 싸우려면 끈질기고 성실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책은 말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