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스텝 제대로 꼬였다…"중대재해 업무 3개월 안에 마비"

전현직 산업안전감독관 3명 인터뷰
"준비 안 한 중기도 문제지만 고용부 준비도 태부족"

현장 감독관 “중대재해 업무 마비될 것”
수사 인력 133명인데 업무는 2.4배 늘어날 전망
중대재해 2호 사고는 2년 째 수사중
이 와중에 83만개 기업 '대진단' 까지
"현재 인력이면 초동 수사도 급급할 것"
"인력과 인프라 부족 심각…수사권 넘기는 게 나을수도"
사진=연합뉴스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이 예견되는 데도 준비 안 된 중소기업도 문제지만, 고용부의 인프라나 인력 등 준비 자체도 태부족입니다. 이대로면 중대재해 수사 업무는 마비될 게 불 보듯 뻔합니다.”

전·현직 고용노동부 산업안전 감독관들은 27일 한국경제에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확대 적용되면서 고용부의 중대재해 담당 인력·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중대재해법 유예만 믿고 있던 고용부가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27일 고용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으로 인해 고용부가 담당할 중대재해 수사 대상은 2.4배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수사 업무는 포화 상태다.

고용부가 수사를 맡아 검찰로 송치하거나 종결 처리한 사건은 34.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그나마 수사가 빠르게 종결돼 1심 판결이 나온 사건도 수사부터 1심 선고까지 1년 5개월이 걸렸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직후인 지난 2022년 2월 성남 현장에서 2명의 사망 사고를 낸 요진건설에 대한 수사는 사고 발생 2년이 다되가는 지금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두 번째 중대재해인 데다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첫 사건이라 중점 수사 대상이었지만 지난해 5월에야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반년째 공판 기일조차 잡히지 않았다.고용부 산업안전감독관 A씨는 “1심 판결이라도 나온 12개 기업은 대부분 사업주가 혐의를 인정한 사례”라며 “혐의를 다투면 중대재해법의 복잡한 입증 구조 탓에 수사 기간이 급격하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부랴부랴 인력 증원에 나섰다. 이정식 장관은 지난 25일 기자단 브리핑에서 “중대재해 수사 담당 감독관을 100명에서 133명으로 증원했어도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15명을 추가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 26일 서울지방 고용노동청에서 장관 주재로 ‘긴급 전국 기관장 회의’를 열고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 현황 파악과 함께 ‘수사 속도 개선 계획’을 점검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사 기간을 줄일 뾰족한 수는 없다.A씨는 “고용부가 발표한 산업안전감독관 15명 증원은 언 발에 오줌 누기”라며 “근로감독관에서 추가로 정원을 빼 오는 방법도 있지만 정부가 임금체불 단속과 직장 내 괴롭힘 근절에도 힘을 주고 있어서 근로감독 부문 역시 인력 부족에 허덕인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고용부는 당장 다음 주부터 3개월 동안 83만 7000개의 50인 미만 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산업안전 대진단’에 착수할 방침이다. 안전보건공단과 민간기관의 도움을 받는다지만 중심이 돼야 할 산업안전감독관 전원(800명)이 대진단에 달라붙는다 가정해도 1인당 1000개 넘게 맡아야 한다.

결국 실효성 없는 ‘졸속 진단’이 우려된다. 산업안전감독관 B씨는 “50인 미만 사업장 사고가 누적되기 시작하면 초동 수사에만 급급할 것”이라며 “이르면 3개월 내 수사 업무가 마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 수사와 관련해 내부 업무 방침, 관할 등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아 혼선도 우려된다. B씨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50인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 지방청 ‘광역 중대수사과’에서 처리해왔다”며 “업무가 폭증하면서 지청 인력도 본격 투입돼야 할 판인데, 법이 실시된 27일까지도 관할 관련 지침이 안 내려 왔다”고 꼬집었다. 사고가 났을 때 누가 나가야 할지도 명확지 않다는 의미다.

결국 이런 수사 지연과 혼란, 업무 과중은 고스란히 중소기업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 산업안전감독관 출신 C씨는 “결국 수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수사 몰아서 하기, 잦은 대표 소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중소기업은 더욱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한 노무법인 대표는 “25일 법 적용 유예가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자문 고객인 중소기업 사업주들로부터 자문 문의가 빗발쳤다”며 “내용이 복잡한 데다 추가 비용 얘기가 나왔더니 운에 맡기겠다며 반 포기한 업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28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민주당이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 조건으로 내건 사항을 보완하고 ‘역제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이 내건 '예산 투자 2조원’을 넘어서는 예산 계획을 제시하고 중대재해법 유예안 재상정을 요청하겠다는 뜻이다. 고용부 내부에서 느끼는 위기감도 심각하다. 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전문성을 이유로 법 시행 직후부터 고용부가 경찰 대신 중대재해 사건 수사권을 도맡아 왔지만 재앙에 가까운 인력, 인프라 부족 사태를 맞이했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