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만 선거와 한국 기업의 대응 방안
입력
수정
지면A33
신동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국제제재팀장지난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됐다. 세계 선거의 해라고 불리는 올해는 세계 76개국에서 42억 명이 투표에 참여하는데 대만 총통 선거는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열린 중요한 선거였다.
당선자인 라이칭더 후보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더욱 독립적인 입장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됐기에, 대만 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과 대만 간 긴장도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대만 문제로 충돌이 잦았던 미국과 중국 간 관계도 친독립 성향의 민진당의 집권이 계속되면서 갈등이 지속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양안 관계와 미·중 관계는 한국 기업에도 큰 영향을 주기에 이번 대만 선거 결과는 가뜩이나 불안한 세계 경제에 또 하나의 불확실성을 더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기업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다. 이번 총통 선거와 함께 실시된 대만 의회 선거는 2004년 후 처음으로 절대 과반수가 없는 결과를 낳았다. 여당인 민진당은 11석을 상실하며 원내 제2당으로 주저앉았다. 제1야당인 국민당은 52석으로 제1당이 되긴 했지만 역시 과반 의석 획득에는 실패했다. 행정부는 민진당 집권이 이어지지만, 의회는 여소야대 상황이 되었기에 라이칭더 당선자가 친미반중 행보를 취하는 데는 제약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행정권과 입법권이 각각 다른 정파에 속하는 소위 ‘분열된 정부’(divided government)는 역설적으로 대만이 중국이나 미국 어느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리는 상황을 막고 대만 내부에서 현상 유지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도 낳는다. 대만의 독립 선언이나 이를 저지하기 위한 중국의 무력 침공이야말로 글로벌 공급망 길목인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최악의 시나리오였음을 상기하면 이번 선거 결과는 대만 유권자들의 신의 한 수였을지도 모른다.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은 계속 안심할 수 있을까. 중국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대만을 병합하겠다는 옵션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다. 이는 힘에 의한 대만 해협의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미국의 일관된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이미 미국은 중국의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 신장위구르에서의 무슬림 소수 민족 억압 등을 빌미로 한 여러 가지 대(對)중 경제 제재를 도입해왔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한 강력한 수출 통제도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로서는 대만 총통 및 의회 선거 결과에 일단 안도의 한숨을 돌리면서도 미·중 간 갈등으로 인한 신냉전이라는 큰 흐름이 계속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태의 흐름을 주시하고 전문가 조언에 귀를 기울이면서 중국 및 대만과의 사업·교역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