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의 '지정학적 리스크'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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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세 위협 요인 급격히 증가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영국 에너지 기업 BP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미국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도 뒤를 따랐다. 작년 말 현대자동차는 러시아 현지 공장을 14만원(1만루블)에 매각한다고 결정했다. 미국 예일대 최고경영자리더십연구소(CELI)에 따르면 연 1억달러 이상 매출 기업 1589개 가운데 러시아에서 철수한 기업(535개)이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다. 전쟁 전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2500억달러의 직접투자액이 러시아에서 빠져나갔다는 통계 수치도 있다.
전문가 확충·다변화로 대처해야
박희권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지정학이 글로벌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예다. 올해도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은행은 지정학적 위험이 올해 세계 경제와 인플레이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9·19 군사합의가 무력화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영토 평정’으로 위협하는 등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 대결 구도의 공고화로 한반도가 지정학 경쟁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해지고 우크라이나와 가자 전쟁이 장기화하는 점도 불안 요소다.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은 글로벌 공급망에 불확실성을 가중하고 있다. 여기에 무역과 공급망이 우방국 위주로 재편되는 프렌드쇼어링은 그동안 자유무역 체제 아래에서 성장해 온 한국 기업에 도전 요소다.
올해 가장 우려할 요인은 선거다. 70개국 이상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슈퍼 선거’의 해에 정부 변경은 정치·안보 상황의 불안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중 미국, 러시아, 인도 선거는 주목을 요한다. 특히 미국 대선 결과는 지구촌 최대 지정학 변수다. 글로벌 외교·안보, 무역, 통상뿐 아니라 동맹인 한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정학 경쟁의 최전선에 자리한 한국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먼저, 전 세계를 상대로 영업하는 한국 기업들은 지정학 변화가 초래할 파장을 사전에 분석해 대비해야 한다. 오늘날 지정학 자문은 경영컨설팅의 주류산업이 됐다. 다국적 기업은 전직 외교관, 정치인 등 국제관계에 밝은 인물을 ‘최고지정학책임자(CGO)’로 영입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우리 기업도 지정학 변화를 면밀하게 분석해 대처해야 한다. 자체 대응 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재외공관 등과의 소통 체계를 구축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둘째,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ISD는 1959년 독일-파키스탄 간 무역협정에 도입된 이후 안정적 투자환경 구축 장치로서 보편화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활용도 점차 확대될 것이다. 정부는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한 교육과 법률 자문 등 지원체계를 강화해 ISD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도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급망, 무역과 투자의 다변화다. 우선, 전략물자의 대중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요소수 부족 사태가 해결됐다지만 앞으로는 갈륨, 게르마늄, 희토류, 흑연 등 주요 원자재 부족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자재와 핵심 광물이 풍부한 아프리카와 중남미로 눈을 돌려야 한다. 아프리카는 석유, 가스, 코발트, 크롬 등 광물자원이 풍부할 뿐 아니라 성장잠재력이 크다. 중남미는 니오븀, 리튬, 구리, 몰리브덴 등이 풍부한 신흥시장이다.
한국의 무역과 투자는 아시아, 북미, 유럽에 편중돼 있고 양 대륙에서의 실적은 경쟁국에 비해 미미하다. 시장과 투자 다변화는 공급망 위험 분산과 미래 고객의 확충에 기여한다. 정부는 세제와 금융 등 과감한 정책 지원으로 기업의 신시장 개척을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