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정점 찍었나…앨범 판매 최대 60%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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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팬덤마저 지갑 닫아K팝 시장의 새로운 주축으로 등장한 스트레이키즈(JYP)와 에스파(SM), 세븐틴(하이브)의 앨범 판매량은 모두 하락하는 추세다. 한터차트로 유명한 한터글로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발매한 에스파의 미니앨범 4집은 120만 장(연간 누적 기준)이 팔려 그보다 6개월 전 내놓은 미니앨범 3집(189만 장)의 65%에 그쳤다. 일부 K팝 그룹의 초기 판매량이 전작 대비 절반 이상 줄었다는 것은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유안타증권은 4대 K팝 기획사의 올해 앨범 판매량을 전년보다 5.3% 줄어든 8270만 장으로 전망했다. 최근 4년간 앨범 판매량 증가율이 40% 이하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20년과 2023년에는 각각 82.5%와 74.7%에 달했다. 엔터테인먼트업계 고위 관계자는 “음반 판매량은 K팝 산업 성장의 바로미터”라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급속도로 성장한 K팝 산업이 정점을 찍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엔터업계에서는 ‘K팝의 쌍두마차’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가 K팝 산업의 수익성 리스크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반응도 나온다. 인기 절정기에 BTS는 군대에 갔고 블랙핑크 멤버들은 저마다 자신의 소속사를 구해 떠났다. 수익성이 가장 좋은 시기에 글로벌 스타 아티스트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YG엔터테인먼트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3개월 전 1005억원에서 772억원으로 20% 넘게 하향 조정됐다. YG엔터 주가가 지난해 5월 9만7000원까지 올랐다가 4만원대로 주저앉은 것은 블랙핑크 재계약과 관련이 크다.
코로나로 급성장후 '역기저효과'
SM 에스파, 189만→120만장
YG, 블랙핑크 재계약 실패 '쇼크'
"수익 다각화·현지화 전략 시급"
엔터회사 주식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은 최근 5년간 가장 낮아졌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양현석 YG엔터 총괄프로듀서가 지난 열흘간 각각 50억원과 200억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했지만 K팝 산업을 보는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다. 하락세가 겨우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엔터업계는 수익 다각화와 현지화 전략으로 정점(피크아웃)론을 타파하겠다는 계획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현지와의 협업을 늘려 현지 콘텐츠를 ‘K스타일’로 완성하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YG엔터는 지속적인 신인 발굴과 아티스트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2차 비즈니스를 늘려나가겠다는 계획을 전했다.하이브는 엔터주 가운데 유일하게 목표주가와 실적 전망치가 유지되고 있다. 하이브 관계자는 “IP를 다양한 플랫폼과 융합하는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하이브는 K팝을 음악 장르가 아니라 제작 시스템으로 보고 다양한 지역으로 이를 확장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K팝이지만 한글 가사 없이 영어로 이뤄진 곡이 연이어 나오거나 한국인 중심에서 벗어난 K팝 그룹이 등장하는 것도 현지화 전략의 일환이다. 가요계 관계자는 “기획사들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K팝이 현지화라는 이름으로 특색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많다”며 “한국어나 한국인 없는 팝음악이 K팝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K팝 산업의 위기론을 불식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윤상/최지예 한경텐아시아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