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슬픔 뿐이라, 고래 잡으러 떠난 그들

[arte] 김기태의 처음 책 이야기

최인호 장편소설
고래사냥
동화출판공사
1983년 7월 25일 초판 발행

청춘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키우는 고래 한 마리를 찾아서

작가 최인호(崔仁浩, 1945~2013)의 장편소설 『고래사냥』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 인기에 힘입어 곧바로 영화와 TV드라마에 이어 뮤지컬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원래 이 작품은 1982년 여성지 《엘레강스》에 연재된 뒤 1983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필자가 대학에 입학해서 세상과의 불화를 몸소 경험할 무렵이었다!)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에 접어든, 군부독재와 함께 급격한 산업화로 요약되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던 젊은이들의 울분과 고뇌 그리고 체념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앞표지
이 작품 속 주인공 ‘병태’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대학생이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패기는 눈꼽만큼도 없으며, 도전의식은 찾아볼 수 없으며, 용기도 없는 나는 인간의 탈을 쓴 허수아비다.” 평소 짝사랑하던 같은 과 여학생 ‘미란’(목사님 딸이지만 노동운동에 적극적인 여학생이다.)에게 사랑을 고백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자신의 소심함에 절망한다. 그리고 2학기 등록을 앞둔 여름방학 끄트머리에서 “껍질이 깨어지는 아픔이 없이는 나비가 되어 날지” 못하는 애벌레 같은 자기를 깨기 위해, ‘신화처럼 숨쉬는 고래’를 잡겠다는 각오로 가출을 감행한다. 소주 두 잔에 취한 채 짝사랑하는 ‘미란’을 찾아가 ‘떠남’을 알리는 용기를 발휘한 병태는 하루 종일 거리를 배회하다가 통금단속에 걸려 들어간 유치장에서 ‘민우’라는 거렁뱅이를 만나게 된다. 그런 인연을 이어서 함께 윤락가를 찾았다가 벙어리 처녀 ‘춘자’를 만나 하룻밤을 보내면서 병태는 그녀가 원래 벙어리였던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병태와 민우가 춘자를 고향까지 데려다 주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결국 병태는 미란에게 가졌던 감정이 사실은 자신도 모르는 무의미한 것이었을 뿐이고, 자기가 찾던 ‘고래’의 진짜 의미는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주변의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병태가 빈 강의실에서 등록금 고지서에 붙어 있는 영수증의 인적사항을 작성하다 분연히 어디론가 떠날 것을 결심하는 대목에서 두 편의 낯익은 노래가사가 등장한다. 병태의 머리 속에 오래 전에 들었던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 보이는 것은 모두다 돌아앉았네.
자! / 떠나자, 고래 잡으러. 삼등삼등 완행열차, /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모두들 가슴 속에 뚜렷이 있다. /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 떠나자! 고래 잡으러. 신화(神話)처럼 숨쉬는 고래 잡으러.’
그래. / 병태는 일어섰다. 그는 칠판에 씌어진 낙서를 지우개로 지웠다. 그는 몽당분필을 들고 다음과 같이 칠판에 썼다.
‘젊은 나이를 눈물로만 보낼 수가 있는가. 나두야 간다.’
그는 그 구절 앞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고래를 잡기 전에 돌아오지 않겠다.’

그리고 병태는 “등록금 신청용지와 수강 신청용지를 찢어서” 버리고는 길을 나선다. 병태는 이미 아버지에게서 등록금 ‘42만 3천 6백원’에 거짓 용처를 보태서 50만 원을 타낸 터였다. 눈 밝은 독자라면 알아봤을 테지만, 위 대목을 읽노라면 가수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과 함께 김수철이 부른 ‘나도야 간다’를 연상하게 만든다.

영화 《고래사냥》의 주제가는 ‘고래사냥’이 아니다?

최인호의 장편소설 『고래사냥』이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면서 배창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 주인공 병태 역을 맡은 이는 당시 노래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불러 가수로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김수철’이었다. 그리고 배우 이미숙과 안성기가 조연으로 나와서 영화의 감칠맛을 높여주었다. 그 결과 서울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는 서울에서만 4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1984년에 가장 많은 사람이 관람한 영화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제가로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을 떠올리는 이유는 아마도 제목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 ‘고래사냥’은 가수 송창식이 1975년에 발표한 2집 앨범에 수록된 여름 노래인데, 작사가가 바로 작가 최인호였다. 그런 연유로 최인호는 자기 소설 속에 거리낌 없이 노래가사의 한 대목을 가져다 썼던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영화 ‘고래사냥’이 아닌 하길종 감독이 만든 영화 ‘바보들의 행진’ 주제가로 먼저 쓰였다. 최인호의 신문연재소설이었던 『바보들의 행진』을 하길종 감독이 1975년에 영화로 제작했던 것이다. 정작 영화 ‘고래사냥’의 주제가는 김수철이 노래한 ‘나도야 간다’였다. 1984년에 나온 김수철의 첫 번째 앨범 <젊은 그대>에 실린 곡이었다.

봄이 오는 캠퍼스 잔디밭에 / 팔벼개를 하고 누워 편지를 쓰네
노랑나비 한 마리 꽃잎에 앉아 / 잡으려고 손 내미니 날아가 버렸네
떠난 사랑 꽃잎 위에 못다 쓴 사랑 / 종이비행기 만들어 날려버렸네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 있나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 님 찾아 꿈 찾아 나도야 간다

이 가사는 기실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 1904~1938)의 시 ‘떠나가는 배’를 차용한 것이다. 첫 연에서는 “나 두 야 간다 /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 거냐 / 나 두 야 가련다”, 마지막 연에서는 “나 두 야 가련다 /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 거냐 / 나 두 야 간다'로 기막히게 노래한 바로 그 시다. 박용철 시인의 나이 26세 때인 1930년에 김영랑과 함께 발간한 《시문학》 창간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에서 젊은이가 겪어야 했던 갈등, 어디론가 떠날 수밖에 없는 유랑민의 처지를 ‘떠나가는 배’로 표현했다. 비장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처연한 의식이 1980년대 우리 청년들의 울분으로 승화된 것이다.

한편, 『고래사냥』에서 주제어처럼 쓰이곤 하는 ‘한 마리 예쁜 고래’는 최인호의 이전 작품인 『바보들의 행진』에서도 반복적으로 쓰인 바 있다.

『고래사냥』 초판본에 스며든 이야기

1963년 모 신문사 신춘문예 응모작품 중에 「벽구멍으로」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었다. 신선하고 독특한 문학세계를 담은 이 작품은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신춘문예에 입선한다. 시상식이 여리는 날, 심사위원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교복 차림의 고등학교(서울고) 2학년 학생이 자기가 투고한 작품이라며 상을 받으러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 최인호는 최연소 신춘문예 입선을 비롯해 최연소 신문연재소설 작가, 소설책(『별들의 고향』, 1973) 표지에 얼굴이 실린 최초의 작가이자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로 만들어진 작가 등 우리 문단에서 이색 기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작가다. 1983년 7월 25일 동화출판공사에서 초판 1쇄가 발행된 『고래사냥』의 표지를 보면 동해바다를 연상하게 만드는 푸른색 바탕에 한글 제목 ‘고래사냥’이 위쪽에 표기되어 있고 그 아래에 2행에 걸쳐 한자로 ‘崔仁浩 / 長篇小說’이란 글자가. 맨 아래에는 출판사 이름이 자리잡고 있다. 특이한 것은 표지의 오른쪽에 치우쳐서 절반 가량만 보이는 작가의 얼굴 그림이다. 하지만 이내 표지 날개를 젖혀보면 작가의 얼굴이 표지와 날개에 걸쳐 인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표지 날개 하단에 ‘裝幀:朴昇雨’라고 되어 있으나 ‘박승우’가 실제 어떤 인물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도 작가 얼굴 그림 또한 그의 솜씨인 듯하다. 뒤표지를 보면 “우리들의 용감한 고래 사냥꾼 병태, 민우 그리고 춘자! / 이들이 펼치는 현대판 청춘 서유기!”라는 홍보문구 아래 책 속에서 병태가 떠올렸던 노래 ‘고래사냥’의 가사가 새겨져 있다.
뒤표지
간기면은 본문 용지에 인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면지(面紙)에 별도로 간기(刊記) 사항을 기록하여 인쇄한 용지를 붙여 놓았다. 초판 1쇄 발행 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선연하게 빛나고 있는 인지(印紙)의 붉은빛이 매우 인상 깊었다.
간기면 부분
이제 작가 최인호 선생과 『고래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보니 아무리 현란한 묘사로도 그 도저한 흔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서사와 독서가 동시에 사라지고 있는 요즈음,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작가 최인호를 기억하자고 말하는 것으로 이 글의 마무리를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