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다닐 만하다'는 직업을 때려친 32명의 이야기 [서평]

[arte] 책 리뷰
왜 어떤 직업엔 여자가 몰릴까
'여초' 직업의 진실


이슬기·서현주 지음
동아시아
268쪽 / 1만7000원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 분)은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가해자 딸의 담임교사가 되는 방법을 택한다.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동은이 택한 교사가 "안정적인 직업의 대명사"`라는 데 주목한다. 넷플릭스 제공
교사, 간호사, 승무원, 방송작가…. 세상에는 종사자 중 여성의 비율이 현저하게 높아 '여초'라 불리는 직업들이 있다. 여초 직업은 '여자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세간의 부추김과 동시에 흉흉한 소문에 둘러싸여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느니 '여자들만 모아놓으면 갈등이 많다'는 식의 풍문은 인력 부족 같은 부조리한 구조를 성별 문제로 치환한다.

최근 출간된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여초 직업의 기원과 진실을 파헤치는 책이다. 기자 출신 이슬기 칼럼니스트, 그리고 초등교사로 일하다 현재는 작가이자 성교육 활동가로 살고 있는 서현주 두 사람이 여초 직업을 택했다가 이를 '때려치운' 32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여성들의 진로 선택부터 퇴직까지를 탐구한 논픽션이자 르포르타주다.평생 직업이 사라진 시대. 직업을 때려치운 게 뭐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업 선택 순간부터 '여자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사회적 압력 내지는 권유가 작용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자 하기 좋은 직업'이란 이른 퇴근 후 가정의 돌봄 노동을 전담하기 좋은 '가성비' 직업이란 뜻이고, 교사 등은 일터에서도 돌봄의 역할이 강조된다. 여성들이 소통에 능하고 감성적이라는 통념은 직장에서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맡도록 부추긴다.

여기에 수도권과 지방의 문제도 끼어든다. 지역에서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에게는 학비가 저렴하고 잘하면 집에서도 통학이 가능한 '지거국' 교육대·사범대·간호학과가 오래도록 최선의 대안으로 여겨졌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인터뷰이 수정(가명)은 대도시 대학에 합격하고도 '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부모님의 만류로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전문대 아동청소년복지과에 진학했지만, 이후 남동생은 4년제 사립대 공대에 진학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생인 엄마뻘 세대가 아들은 대학에 보내고 딸은 고등학교 또는 중학교까지만 보내는 서사를 지녔다면, 1980년대와 1990년대생에 들어서는 아들은 등록금이 비싼 대학에 보내도, 딸은 집 근처 대학에 여자로서 취업하기 좋은 전공으로 진학시키는 서사가 성립하는 것이다."
책은 여초 직업 종사자 모두가 직업을 사회적 압박에 의해 피동적으로 택했다거나 그러므로 이들 모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직업을 '때려치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는 인터뷰집의 강점이기도 하다. 여러 인터뷰이가 들려주는 각양각색의 사연은 독자에게 섣부른 일반화 대신 다채로운 생각거리를 던진다. 이슬기 칼럼니스트는 특정 직업을 폄하할 의도가 없었다고 강조하면서 "여성들이 가진 각양각색의 꿈이 왜 몇 안 되는 직업들로 좁혀져야 했는지, 그것은 정말로 여성들에게 좋은 직업이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나 같은 여자들이, 어디에 있든 자기 본위대로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세상이 정한 '여자는 이래야 해'라는 성별 고정관념이나, 여자에게만 부과된 돌봄 노동의 무게에 치이지 않고, '나'라는 인물을 파악하는 데 오랜 세월 공을 들였으면 한다."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등을 쓴 소설가 정세랑은 추천사를 통해 "한 사람의 욕망과 선택은 어디까지가 그 사람 고유의 것일까?" 물으며 "이 길지 않은 책 안에 오래 묵은 구조와 미래의 방향성까지 모두 담겼다. 이 책이 전국 고등학교 교실마다 놓이길 바란다"고 썼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