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합리적 개인과 불합리한 의료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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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오늘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의료 문제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두 가지 소식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최근 의사 채용에 난항을 겪던 충북 단양 보건의료원이 연봉을 4억2240만원으로 올리고 나서야 4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올해 입시에서 의대 쏠림 현상은 최고조에 달했다. 서울대와 연고대의 정시 최초 합격자 중 1343명이 등록을 포기했는데, 상당수가 의대로 빠져나갔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두 현상의 본질은 경제적 유인이다. 의사의 평균 소득이 일반 근로자의 평균 소득보다 6.8배 높다고 하니, 자녀를 의대에 보내길 원치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도시 의사의 웬만한 수준보다 높은 소득이 보장돼야 지방 의사의 길을 선택하겠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생각이다. 모두 개인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다.
하지만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라고 해서 사회에까지 합리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의사 공급은 매우 제한적이다. 인구당 의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에서 두 번째다. 당장은 버틸 수 있어도 머지않은 미래에 의사 부족과 의료비 상승 문제가 발생하는 건 명약관화하다. 국민 의료 지출은 급격히 늘어날 텐데, 의료 인력 공급이 지출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 의사 한 명이 누릴 미래 이득은 더 커질 것이다. 의대 입시 준비를 위한 과도한 사교육 열풍이 괜한 일은 아니다.의료계 내의 쏠림 현상 역시 경제적 유인의 격차에서 비롯한다. 비급여 진료로 고소득을 누리는 진료과와 그렇지 못한 필수 의료 간 인력 공급 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다. 또한 의사들이 경제적 유인이 높은 도시와 수도권에 몰리면서 지역 간 의료 격차와 그로 인한 지역 간 건강 격차가 벌어지는 점도 시급한 문제다. 이처럼 의료 문제는 인구 고령화, 지역 격차, 사교육 등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따라서 의대 정원 확대에만 너무 얽매이지 말고 의료 체계와 경제적 유인의 재설계를 통해 관련 사회 문제도 함께 해결해 갈 필요가 있다.
인구 고령화와 의료 기술 발전을 함께 고려해 의대 정원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 대비를 위한 기본이다. 진료과목 간 공급 격차와 지역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유인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 특히 인구 소멸 지역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려면 시·공간의 제약을 줄이는 기술과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의대 쏠림과 관련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사와 비(非)의사 간의 경제적 격차를 줄여가야 한다. 모두 격차와 관련된 문제다. 이런 격차들은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서 출발하지만,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격차가 되느냐는 국가 정책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