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잘못 팔았다 죽은 사람이 된 남자…영화 '데드맨'

봉준호 '괴물' 집필 하준원 감독 데뷔작…바지사장 세계 그려
"이름이요? 그걸 어떻게 팔아요?"
저축은행 파산으로 빚더미에 앉게 된 만재(조진웅 분)가 장기 밀매 현장을 찾았다가 신장 대신 이름을 팔라는 노인의 말을 듣고는 되묻는다. 한 남자는 만재에게 다가와 "실제 차는 폐차돼도 넘버만 살아 있다면 제값을 받는 셈"이라고 설명해준다.

만재의 인생이 아무리 망가졌더라도, 서류상 대한민국 국민인 그의 명의가 필요한 사람은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만재는 이른바 '바지 사장' 업계에 발을 담근다. 신분 드러내기를 꺼리는 사람들은 만재의 이름 뒤에 숨어 사업을 하거나 검은돈을 굴린다.

만재는 무늬만 대표로 맡은 업무를 충실히 해내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은다.

하준원 감독이 연출한 '데드맨'은 뉴스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바지 사장의 세계를 그린 스릴러물이다. 이름 한번 잘못 팔았다가 순식간에 죽은 사람이 되어 버린 만재가 신분을 되찾으려 추적에 나서는 이야기를 큰 줄기로 한다. 전설적인 바지 사장으로 승승장구하던 만재의 발목을 잡은 이는 그가 이름을 빌려준 한 벤처 회사의 진짜 사장이다.

그가 회삿돈 1천억원을 가로채는 바람에 만재가 죄를 대신 덮어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급기야 만재가 죽었다는 뉴스까지 보도된다. 하지만 그에게 의문의 여인 심 여사(김희애)가 손을 내밀면서 누군가가 짜놓은 이 판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심 여사는 만재가 횡령했다는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갔을 거라 보고 사건의 배후를 함께 쫓는다.

바지 사장으로 살다 죽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젊은 여자 희주(이수경)도 여기에 합세한다.

이들과 대척점에 선 유력 정치인, 정치 깡패, 일명 '쩐주' 등도 속속 등장하며 진실을 좇는 쪽과 숨기려는 쪽의 대결은 팽팽해진다.

돈 때문에 얽히고설킨 사람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나오는 만큼, 추리극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 각본을 공동 집필한 하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그는 돈을 받고 이름을 파는 사람들을 5년에 걸쳐 취재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덕분에 그간 말로만 들었던 바지 사장 세계가 생생히 표현됐다.

그러나 신선한 소재의 힘을 끝까지 유지하지는 못한다.

초반부 스토리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기승전정치'라는 뻔한 전개 때문에 갈수록 맥이 빠진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캐릭터가 강한 면이 있어 좀처럼 자연스레 섞여 들지 못하는 면도 있다.

설 연휴 개봉하는 한국 영화 중 유일하게 스릴러 장르라는 점은 차별점이 될 수 있다.

이 영화는 유해진·윤여정 주연의 '도그데이즈', 나문희·김영옥 주연의 '소풍' 등 휴먼 드라마 작품들과 맞대결할 예정이다. 2월 7일 개봉. 108분.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