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규의 데이터 너머] 선진국보다 4배 많은 韓 상속세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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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규 경제부 기자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상속세 부담이 갈수록 늘고 있다. 과표 기준은 그대로인데 자산 가치가 불어난 결과 부자뿐 아니라 일반 중산층의 세 부담도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이 최근 발간한 ‘2023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상속인이 내야 하는 상속세 결정세액은 19조2603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4조9131억원보다 네 배가량 증가했다.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작고에 따라 상속인들에게 부과된 세금이 2022년 결정되면서 상속세 규모가 크게 늘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상속세는 상속인의 신고와 과세관청의 결정으로 확정된다. 신고 기한은 6개월이며, 신고 후 9개월 이내에 세액이 최종 결정된다. 2020년 10월 작고한 이 회장의 상속세가 이런 절차를 따라 2022년 확정됐다.
결정세액이 바로 세금 수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속인들은 일정 이자율의 가산금을 내고 세금을 분할 납부할 수 있다.
상속세 1년 만에 4배 껑충
삼성그룹 일가의 상속세를 제외하더라도 2022년 상속세 결정세액은 약 7조2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4조9131억원)에 비해 약 1.5배 많다. 최근 수년간 아파트 등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 가치가 크게 뛰면서 상속세가 일부 대기업 총수 일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 국민의 세금이 되고 있는 것이다.전 세계적으로 봐도 한국의 상속세 부담은 유례없이 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를 통해 분석한 한국의 총조세 대비 상속·증여세 부담률은 2.4%(2021년 기준)다. 주요 7개국(G7)의 상속·증여세 부담률 평균 0.6%에 비해 4배나 많다. 부담률이 1.6%인 프랑스와 1.3%인 일본을 제외한 다른 5개국과는 최소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영국(0.8%), 독일(0.7%), 미국(0.5%) 정도가 그나마 높은 편이었고, 이탈리아는 0.1%에 그쳤다. 캐나다는 상속세가 없다.
10년 새 증가폭도 한국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부담률은 2011년 1.0%에서 1.4%포인트 증가했다. G7의 평균 증가 폭 0.2%에 비해 7배 많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담률은 2.4%, 세계 최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증여세 부담률로 봐도 비슷한 결과다. 한국의 부담률은 0.7%로 프랑스(0.7%)와 함께 공동 1위다. 이런 기준으로도 10년 새 증가폭은 0.5%포인트로, 0.3%포인트인 프랑스보다 높았다.한국의 상속세 부담이 이처럼 큰 것은 우선 세율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 상속세 최고세율(50%)은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OECD 평균(15%)을 크게 웃돈다. 특히 최대주주가 기업을 승계받을 때 할증률(상속세율의 20%)이 적용되면 최고세율이 60%로 높아져 일본도 앞지르게 된다. G7의 상속세율을 보면 프랑스 45%, 미국 40%, 영국 40%, 독일 30%, 이탈리아 4%다. 캐나다와 싱가포르는 해외 기업과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상속세를 폐지했다.
상속 과정에서 기업 지분에 대해 주는 혜택도 주요 선진국에 비해 미미하다. 영국은 상장주식의 50%, 비상장주식의 100%를 공제해준다. 프랑스는 환매하지 않을 경우 조건부로 지분 75%까지 공제한다. 스페인은 지방정부 17곳 중 6곳에선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가혹한 상속세 부담이 여러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지만 상속세 감면 논의는 부자감세 프레임에 번번이 가로막히고 있다. 상속세 부담을 낮추겠다는 현 정부도 과표 조정이나 세율 인하 등은 검토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각종 제도와 경제 지표를 OECD 수준에 맞춰야 한다. 상속세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