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해링의 회전목마, 바스키아 대관람차…1987 '예술계 전설' LA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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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함부르크에 혜성처럼 등장한 '루나 루나'
세계 최초의 예술 테마파크에 25만 명 몰려
안드레 헬러 기획해 당대 최고 예술가 32명 참여
바스키아와 해링, 호크니와 달리까지 '모두의 예술'로
맥도날드 인수 제의도 있었지만 분쟁 끝 해체
미국 텍사스주 44개 컨테이너에 나눠 방치
유명 래퍼 드레이크 "1억달러 투자하겠다"
1년 넘게 복원 거쳐 작년 12월 LA서 부활
장 미셸 바스키아의 드로잉으로 가득한 대관람차, 키스 해링이 만든 회전목마, 데이비드 호크니와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외벽을 가득 채색한 파빌리온….미술을 좀 안다는 사람들의 꿈 속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 함부르크 한복판에 잠시 존재했던, 전설이 된 30여 명의 아티스트가 실제 참여했던 테마파크 이야기다.
때는 바야흐로 1987년. 오스트리아 출신 예술가 안드레 헬러(75)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한 곳에 모아 놀이기구로 가득한 예술 테마파크 '루나 루나'를 만들었다. 예술가들에게 지급되는 금액은 고작 1만달러. 헬러는 “루나 루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여행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놀이공원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꼬박 10년이 걸렸다. 독일 한 잡지사가 50만달러를 투자해 문을 연 '루나 루나'엔 그해 여름에만 25만 명이 다녀갔다. 언론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찔하고 눈부신 예술 쇼”라고 평가했고, 맥도날드가 인수 제안을 하는 등 몸값도 치솟았다.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예술 축제를 지향하던 이 카니발은 유럽과 미국 투어를 계획했다가 소유권 변경과 계약 분쟁으로 소송에 휘말리며 해체됐다. 작품들은 44개의 컨테이너에 담겨 창고에 들어갔다. 30년 넘게 텍사스주 한가운데 방치돼 잠들어 있었다.
모두가 루나루나의 잊고 있던 지난해 12월 15일,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에 '루나루나'가 깨어났다. LA다운타운의 1601 이스트 6번가 '에이스 미션 스튜디오'에서다. '루나 루나 : 잊혀진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배경엔 미국의 유명 래퍼 드레이크와 그의 크리에이티브 그룹 '드림크루'가 있었다. 드레이크는 잊혀졌던 예술의 놀이동산 프로젝트를 알게 되자마자 1억달러(약1350억원) 투자를 결정했다. 여러 컬렉터들과 예술품 전문 변호사, 뉴욕의 아트 마케팅 에이전시 등이 투자 대열에 합류해 1년 넘게 복원했다. 소니아 들로네의 초대형 그림이 그려진 입구를 지나면 두 개의 대형 창고 공간이 펼쳐진다. 첫번째 공간엔 TV 속 만화 캐릭터들과 패턴, 화려한 그네가 등장한다. 키스 해링의 회전목마, 살바도르 달리의 환상적인 거울의 방, 장 미셸 바스키아가 배경음악(마일스 데이비스의 'TU TU')을 기획한 대관람차가 등장한다. 해링의 캐릭터 위에 올라타고, 바스키아의 해부학적 스케치들을 움직이며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리히텐슈타인의 미로는 거대한 거울의 방으로 꾸며져 길을 잃고 헤매는 동심으로 초대한다. "돈은 자본이 아니다, 오히려 능력이 자본이다"라고 쓴 요셉 보이스의 선언문, 맨프레드 딕스의 대형 천막 무대인 '바람의 궁전'을 지나다 보면 1980년대 예술가들이 왜 이 프로젝트에 기꺼이 응했는 지를 새삼 알 수 있다.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입장료. 1987년 루나루나의 입장료는 20마르크(서독 화폐),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약 22달러였다. 당시 어린이들은 무료 입장이었다.
LA에 재개장한 루나루나의 입장료는 평일 38달러, 주말엔 47달러다. 토요일엔 5인 가족 패키지가 약 200달러부터 시작한다. 가족 VIP패키지는 500달러부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더라도 '살바도르 달리의 거울 돔'과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나무 파빌리온, 안드레 헬러의 연극 예배당 입장은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결혼식을 올리려면 10달러가 추가된다.
단, 85달러의 VIP패스인 파란색 '문패스'를 목에 건 사람은 세 개의 설치물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이 전시는 올 봄까지 LA에서 계속된 뒤 북미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남을 뻔했던 루나 루나의 운명, 이번엔 과연 긴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LA=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