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X ART] 칸쿤의 작은 미술관에서 인간은 마침내 박쥐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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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한빛의 아메리칸 아트 살롱
기승전AI ① SFER IK '박쥐 구름' 전시 리뷰
기승전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갑자기 CES이야기냐고요?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현대미술에서도 AI는 최첨단을 달리는 살아 움직이는 이슈입니다.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지며 언캐니 벨리(Uncanny Valley)마저 넘어서자 북미의 미술관들이 앞다퉈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현대미술관(MoMA)의 컬렉션을 러닝 시킨 뒤 AI 이미지 제너레이터를 활용해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던 래픽 아나돌의 ‘언슈퍼바이즈 (Unsupervised)’가 전시를 연장해야할 정도로 각광 받으면서 AI(를 활용한)아트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도 높아졌습니다.미술관은 왜 AI에 관심이 있을까?
이 가운데 AI(를 활용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며 현대미술의 확장 가능성을 타진하는 북미의 미술관이 2곳 있어서 눈길을 끕니다. 이들이 지원하는 작가와 작업을 2회에 걸쳐서 차례로 소개합니다. AI가 전면에 나서지만 작가들의 최종 종착지는 ‘인간’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성(Humanity)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작가들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 가슴을 울립니다.
멕시코 칸쿤 근처의 작은 마을인 우메이(Uh May)엔 독특한 미술관이 하나 있습니다. 정글 한 가운데 자리한 이 미술관은 돌, 나무, 나무껍질, 풀 소재의 특수섬유로 지어졌는데 외관이 너무나 독특해 ‘과연 이런 건축물이 세상에 존재할까? 컴퓨터 랜더링 이미지 아닌가?’ 싶을 정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지난 2018년에 문을 열었고, 2023년에는 추가 분관이 툴룸에 생겼습니다.)
이 신기한 미술관 SFER IK가 지난 12월 아트바젤 인 마이애미비치에서 상금 10만달러의 ‘SFER IK AWARD’의 수상자를 지명했습니다. 어워드는 공모로 진행했는데, 조건은 단 하나였습니다. AI(를 활용한) 아트. 미술관은 왜 AI에 관심을 보였을까요? SFER IK 미술관 창립자 로쓰(Roth) 대표는 “고대부터 존재했던 자연의 지능, 조상들의 지혜 그리고 예술이 AI와 결합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미술관의 이 같은 행보는 가능한 도전으로 보입니다. 약간 복잡해 보이는 로쓰 대표의 말은 선정한 작가의 작업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초학제적 접근이니까요. 1등에 선정된 작가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앙투안 베르탱(Antoine Bertin)입니다. 그가 제안한 작업은 ‘박쥐 구름’(Bat Cloud). 정글에 위치한 미술관 마당에 장비를 설치한 뒤, 초음파로 소통하는 박쥐의 소리를 채집하고 이를 AI의 도움을 받아 해석해 내는 작업입니다. 박쥐의 언어를 AI에 학습시키고 정교화 하기 위해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의 행동생태학 및 생물음향학 연구실 수석인 미리잠 쾨른스칠드(Mirjam Knörnschild) 박사가 협업합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베르탱 작가는 “박쥐들의 대화를 엿듣는다면, 인간 중심적 관점을 뛰어넘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합니다. “자연과 AI라는 더 넓은 맥락에서 지능과 의사소통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박쥐인가? 그렇다면 그 많은 생물 중에서 작가는 왜 하필 박쥐를 선택했을까요? 지난 몇 년간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숙주로 거론되기까지 하며 ‘영 꺼림직한’ 생물인데 말입니다. 베르탱은 “박쥐와 인간 모두 포유동물”이라며 인간과의 유사성을 지적합니다. 자녀에게 음성으로 언어를 가르치는 것(모성어·motherese)을 비롯해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박쥐는 곤충을 주로 먹고, 꽃가루를 옮기는 역할을 한다. 굳이 따지자면 (사람에게) 이로운 동물이다. 그런데 많은 나라에서 박쥐를 두려워하고, 싫어해 최근 그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AI를 통해 박쥐들 사이의 소통하는 방식과 그들의 사고를 깊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말대로 된다면, 박쥐에 대한 인간의 오해도 바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쥐들의 목소리를 채집하는 ‘박쥐 구름’은 지역 공예작가들과 협업할 예정입니다. AI엔 기본적인 박쥐 언어가 입력되어 있지만 이를 발전시키는 것은 작업 설치 이후입니다. 박쥐들이 날아다니며 내는 소리, 다른 박쥐와 대화를 채집해 알고리즘에 학습시키면, AI가 이들간의 패턴을 찾아내고 박쥐 떼의 독특한 소통방식을 읽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AI라는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동원해 박쥐의 지능을 엿보는 셈’인 것이죠. 인간은 지독히도 이기적인 종(種)‘인간이 모든 생물을 지배한다. 신이 허락했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인류는 천년 넘는 시간 동안 지구의 지배자로 살아왔습니다. ‘언어’는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주요한 특징으로 꼽힙니다. 소통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니까요. 인간 이외의 동물은 소통이 불가능하거나, 소통한다 할지라도 무척이나 간단한 수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베르탱작가는 지독히 ‘인간중심적인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박쥐 구름은) 인간 외 생물의 언어 복잡성을 드러내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인간의 지능을 재평가하고, 종간 의사소통의 잠재력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이쯤 되면, ‘박쥐 구름’은 야외에 설치되는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닙니다. 유럽인들이 새로운 땅을 찾기 위해 대서양에 배를 띄운 것처럼, 아예 새로운 영역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발롱데세(Ballon d'essai)’에 가깝습니다. “지속가능한 혁신, 종간 보이지 않는 연결, 자연 모방(biomimicry)에 대해 다시 상상해보는 일종의 도전이자 탐험”이라는 작가의 말이 이해가 갑니다. AI가 없었다면
이처럼 흥미로운 베르탱의 작업은 사실 AI가 없었다면 실현불가능한 하나의 상상에 그쳤 을지도 모릅니다. ‘인간 외의 종과 소통’은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법한 소재죠. 작가는 AI가 “인간이 소리, 언어, 음악의 본질에 대해 좀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와 기존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의 소리를 들어 봄으로써,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이해의 폭이 깊어지며 심지어 시간의 제약마저도 넘어설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AI를 활용하는 작가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베르탱은 “AI는 새로운 기술일 뿐만 아니라, 지난 수 천 년간 누적된 집단적 사고의 결과물”이라며 “이 기술이 지구 전체에 어떤 이익을 줄 수 있을까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회화나 조각, 설치가 주는 전통적 예술경험의 최종 목표가 무엇일까를 떠올려본다면 AI(를 활용한)아트는 이를 전혀 다른 차원의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서, 전통적 예술의 경계를 확장해 사람과 자연의 연결점이 되기를 바란다”
베르탱의 작업은 SFER IK 미술관에서 두 달간 머물며 완성될 예정입니다. 지금은 박쥐의 이야기를, 그들의 지혜를 들을 수 있지만 곧 인간의 이야기도 전달할 수 있는 순간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AI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