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하는 의원들, 현장와서 봐라…중대재해 대비할 시간 좀 달라"

국회로 달려간 기업인들
중소기업중앙회와 17개 중소기업 관련 협회·단체는 31일 국회 본관 앞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 두 번째),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세 번째),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네 번째) 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최혁 기자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이곳엔 오전부터 광주, 부산, 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온 중소기업인들이 모여들었다.

전남 화순에서 올라온 박경재 상산건설 대표는 “버스를 빌려 새벽에 출발해 5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다”며 “영세기업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이 얼마나 헛된 생각인지 정치인들에게 호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안전모를 벗었다가 열사병이 걸려서 쓰러져도 그 회사 대표 책임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모호한 규정의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소송만 빈번하게 이뤄져 결국 회사는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기자회견이 예정된 오후 1시30분이 다가오자 국회 본관 계단과 그 주변으로 3500여 명(중소기업중앙회 집계)의 중소기업인이 운집했다. ‘넘쳐나는 노동악법, 기업인은 다 죽는다’ ‘입법하는 의원님들, 현장 와서 한번 봐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기업인들은 저마다 절박한 현실을 토로했다. 배조웅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고용노동부에 신청해 안전진단 전문가 진단을 다섯 차례나 받았지만 전부 생산설비에는 문외한인 노무사여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이런 식으로 과연 사고 예방이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표 발언자로 나선 장범식 하송종합건설 대표는 중대재해법이 중소 건설사를 존폐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성토했다. 장 대표는 “건설 현장에 투입해야 할 안전비용은 급증하고 있는데 산업안전보건 관리비가 10년 넘게 고정돼 있어 진퇴양난에 빠졌다”며 “제도 개선은 뒤로 미룬 채 사업주 처벌만 강화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건설업계의 99%가 넘는 중소 건설기업은 존립을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정부의 준비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식품포장회사 천일을 운영하는 최봉규 대표는 “중대재해법이 적용되기 전인 2022년부터 미리 준비하려 했지만 당시 국가에서 지원하는 컨설팅은 50인 이상 사업장만 가능했다”며 “민간 컨설팅도 알아봤지만 비용 문제로 감당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중대재해법이 대형 로펌이나 민간 컨설팅회사들의 배만 불린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광주에서 올라온 노종호 전일프라스틱 대표는 “지방에서는 안전관리 인력을 뽑기도 어렵다”고 했다. 대구 동명건설에서 일하는 근로자 함문식 씨는 “고령 직원들은 회사 안전관리팀과 갈등이 심해 공황장애를 호소하기도 한다”고 전했다.중소기업인들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무리한 중대재해법 처벌 기준 적용이 자칫 국내 산업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한성 한국파스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자동차 부품업체 중에는 사장을 포함해 5~6명이 일하는 영세 사업장이 수두룩하다”며 “이런 곳에서 사고가 발생해 대표가 구속되면 부품 조달에 차질을 빚게 되고 이는 수직계열화로 이뤄진 완성차 생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이미경/김동주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