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간판 미술관 속 1000대의 차, 10년째 '분노의 질주' 중인 사연

LACMA에 10년 넘게 전시 중인 메트로폴리스2
LA기반 활동하던 크리스 버든의 역작

10만대까지 시속 386㎞ 달리는 '도시의 축소판'
장난감 차 바퀴와 먼지 청소까지
관리하는 팀만 4명 이상 상주하는 미술관 혁신
로스앤젤레스(LA)의 간판 미술관이자 15만 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한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라크마(LACMA)”란 애칭으로 불리는 이곳의 전시와 작품들은 하루 온종일 둘러봐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30분 이상 머물다 가는 작품이 하나 있다.
크리스 버든의 대형 키네틱 아트 '메트로폴리스2' /LACMA
LA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아티스트 크리스 버든(1946~2015)의 ‘메트로폴리스Ⅱ’다. 6차선 고속도로, 18개 도로가 수 많은 빌딩 숲을 지나고 그 위를 1100대의 미니카가 시속 약 386㎞로 질주한다. 이 차들은 멈추는 법이 없다. 경사로를 슬금슬금 올라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내리막길을 미끄러져 내린 뒤 그저 달린다. 미술관이 쉬는 수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5~6회. 매시 정각 출발해 30분간 굉음을 내며 움직인다. 미니카의 질주에 리듬감을 부여하는 건 다소 천천히 돌아다니는 13대의 기차. 레고 블록과 통나무, 아크릴 등으로 제작된 200여 개의 건물은 전 세계 도시의 랜드마크 건물들을 옮겨놓은 듯 미로처럼 얽혀 있다.
크리스 버든의 대형 키네틱 아트 '메트로폴리스2' 를 감독하고 있는 존 산토스.
시끄러운 소음과 복잡하게 얽힌 도시의 모습은 처음 보는 이들에게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지만, 계속 들여다보면 나름의 규칙적인 속도로 서로 부딪치지 않고 움직이는 모습에 명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크리스 버든의 대형 키네틱 아트 '메트로폴리스2'
이 작품은 2012년 1월 LACMA에 설치됐다. 너비 6.4m, 길이 9.1m에 달하는 도시의 축소판같은 이 작품은 분해하는 데만 3개월, LACMA에 설치하는 데만 4개월 반이 걸렸다. 작가가 8명의 스태프와 참여해 6년간 공을 들였다.

미술관은 이 작품을 위해 테라스 공간을 마련해 2층 높이에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개조했다. 첨단 기술과 복잡한 컴퓨터 설계가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이 작업엔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렌더링이 사용되지 않았다. 끈과 펠트, 구리선과 자기장 시스템만을 활용해 완성했다. 처음엔 동네 장난감 가게에서 파는 미니카로 실험했다가 10만 대 이상을 중국 제조사로부터 특별히 공수했다고.
크리스 버든의 대형 키네틱 아트 '메트로폴리스2'
연간 약 650시간 동안 19.8m 길이의 도로를 반복해 질주해야 하는 미니카들의 운명은 누가 관리할까. 메트로폴리스Ⅱ는 유지 관리가 최대 관건이다. 플라스틱 바퀴는 자주 고장나고, 바퀴의 구멍이 뚫리거나 바퀴 자체가 미끄러진다. 마모 속도를 감안해 부품을 자주 교체하고, 도로와 기차 레일 등에 먼지와 부스러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일주일에 한번은 진공 청소기로 청소한다.
크리스 버든의 대형 키네틱 아트 '메트로폴리스2'
작품 감상의 하이라이트는 매일 시연되는 시간마다 이 작품 속에 숨죽인 채 들어가 있는 사람. 미술관 작품 보존관리과에서 일하는 팀들은 주 2회 청소하고 바퀴를 점검하고, 매시간 작품 속에 들어가 제대로 움직이는 지, 오류와 사고는 없는 지를 관찰하고 관리한다. 30분 간 굉음 속에서 마치 마네킹처럼 숨어있다 정적이 찾아온 뒤 작품 속에서 빠져나온다. 바퀴가 빠져나간 파란색 미니카 한 대를 들고 나온 존 산토스는 “4명의 팀이 순환하고 있다”며 “작가는 떠났지만, 그가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는 메신저들이다”고 했다.
크리스 버든의 대형 키네틱 아트 '메트로폴리스2'
LACMA 앞 202개의 가로등을 세운 ‘어반 라이트’ 작품으로도 유명한 크리스 버든은 이 쉴새없이 돌아가는 대형 작품을 왜 만들었을까. 실제 프리츠 랑의 1927년 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생전 “2000년대 중반 머지않아 무인 자동차를 타고 아무도 걱정없이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미래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교통 정체도, 음주운전 걱정도 없는 미래도시의 모습을 이 작품에 담았다고. 하지만 쳇바퀴 돌듯 같은 도시를 쉴 틈 없이 맴도는 색색의 자동차를 보면 마치 지금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다.
LACMA에서 만나는 크리스 버든의 또다른 작품 '어반 라이트'. 1920년대 LA의 가로등 202개를 심어 미술관을 단숨에 명소로 만들었다.
LA에 가면 이 작품을 꼭 봐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억만장자 사업가인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은 이 작품을 비공개 가격에 구입한 뒤 LACMA에 빌려줬다. 미술관 소장품이 아니란 얘기다. 2020년까지의 계약 기간이 끝난 지금도 전시는 연장되고 있지만 언제 자리를 옮길 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작품의 작동 시간은 평일(수요일 제외) 12시~4시까지 매시 정각. 주말은 11시~ 6시까지 6회 운영한다. 작동 시간은 30분. LA=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