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건물주들 노났죠…현찰 수억씩 일시불로 받아가요"

성수동 팝업 열풍
음료·패션·뷰티 등 업종 가리지 않아

대관료는 수억…일주일에 2억원 부르는 곳도
임대료 높여 기존상인 '젠트리피케이션' 조짐도
서울 성수동 빈 건물에 팝업 대관 문의와 관련한 안내가 붙어 있다. 사진=최혁 기자
"이 동네 건물주들 노났죠. 예전엔 크게 쓰임이 없어 거의 비어 있다시피 하던 창고 건물이나 공장들도 팝업 한번 하면 최소 달에 3억~4억원은 받는다던데요."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 인근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큰 기업에서 팝업을 한번만 열어도 건물주들이 현찰로 일시에 수억씩 받아 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카페거리가 있는 성수동 연무장길은 최근 수년간 월평균 100개 이상 팝업스토어(팝업)가 열린다. 특히 3~4년 전부터 루이비통 샤넬 디올 같은 해외 최고급 명품 브랜드까지 이곳에 임시 매장을 열면서 ‘팝업의 성지’라는 별명도 붙었다. 좋은 장소를 선점하려는 기업 간 경쟁이 격화하면서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다.

대부분 건물 예약 꽉 차 "부르는 게 값"

4일 성수동 일대 공인중개업소나 건물 외벽에는 ‘팝업(스토어) 대여’, ‘대관 문의’ 같은 홍보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여 기간과 면적, 입지 등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인데, 성수동 중심부 대로변에서 건물 하나를 장기간 통째로 빌리면 일주일 임차료로 2억원까지 부른다. 임대료가 계속 뛰면서 최근 한두달 새에도 몇천만원이나 올랐다는 게 이 일대 중개업소들의 이야기다. 팝업 수요가 늘면서 전담 대행사가 따로 생겼을 정도다.

기자가 실제 연무장길에 위치한 연면적 660㎡(200평) 규모의 대형 건물에 팝업 임차료를 문의하자 올 여름 성수기(7~8월) 기준 한 달 월세로 6억원을 불렀다. 두 달 이상 빌릴 경우 월세를 2억원씩 깎아주겠다고도 했다. 이 건물을 중개하는 업자는 “메인 스트리트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에 있는 건물이라 장기로 렌트할 경우 임대료를 많이 받는 편은 아니”라며 “중심가 쪽으로 300~400m만 더 가도 두 달에 열 장(10억)은 부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팝업 대관 문의와 관련한 안내를 붙여 놓은 성수동 중개업소들.
팝업은 보통 2~6주 정도 문을 열고 길게는 6개월까지 운영되기도 한다. 단기로 임대하는 팝업의 경우 1년간 최대 5%까지 임대료를 올릴 수 있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이다. 기업 고객들이 대부분이라 비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돈을 더 주고서라도 목 좋은 위치에 건물을 빌리려 하는 분위기다. 대부분 계약금을 일부 걸고 잔금을 일시에 현금으로 지불하는 형태라 팝업을 한두번만 열어도 건물주는 큰 돈을 벌게 된다. 수억원대 월세에도 빈 곳을 찾기는 어렵다. 글로벌 부동산서비스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성수동의 지난 2분기 공실률은 5.8%로 명동(14.3%), 홍대(15.9%), 강남(19.2%), 가로수길(36.5%) 등과 비교해 훨씬 낮았다. 업계에 따르면 위치가 좋은 건물은 내년까지 예약이 꽉 찬 곳도 있다. 팝업 열풍이 불면서 성수동 일대는 '어디 건물 주인 누구가 얼마를 받았다더라'는 얘기만 난무했다.


3년 새 땅값 70% 치솟아

지난해 말 문을 연 서울 성동구 성수동 코카콜라 팝업 스토어 입구에 입장을 기다리는 방문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최혁 기자
기존에 성수동은 땅 값이나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으로 꼽히던 지역이다. 자동차 공업소나 인쇄소·제철소·제화공장 등이 몰려 있어 2000년대까지는 낡은 어두운 건축물이 즐비한 쇠락한 동네로 인식됐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과거 공장이나 창고로 쓰던 곳이 카페나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공장 건물에 ‘대림창고’ ‘블루보틀’ 등 유명 카페가 들어서고, 무신사, 크래프톤 등 패션·문화업체까지 둥지를 틀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탈바꿈했다. 평지인데다가 서울 강남권에서 이동하기에 편리하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층까지 많이 몰린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여러 기업이 성수동에서 팝업을 열기 시작했다. 성수동 연무장길은 월평균 100개 이상 팝업이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월 마지막 주(12월 25~31일 기준) 만해도 이 일대에서 문을 연 팝업이 50여곳 달했다. 코카콜라, 카누(동서식품) 같은 식음료업체부터 러쉬, 휩드 등 뷰티업체, 샤넬과 반클리프 앤 아펠 같은 명품업체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에 위치한 팝업스토어 '디올 성수'. 사진=최혁 기자
팝업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해당 지역 부동산 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기업 알스퀘어에 따르면 연무장길 일대(성수동 1∼2가) 상업 시설 평균 매매가는 대지면적 기준 평당(3.3㎡) 1억2972만 원으로 3년 전인 2020년(7644만 원)보다 약 70% 상승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4년 전인 2019년 6월 220억원에 연무장길 땅을 매입해 지어 올린 사옥 ‘무신사캠퍼스E1’은 지난해 10월 1115억원에 팔렸다.

팝업 오픈 경쟁은 주변 상가 임대료까지 끌어올리면서 성수동 일대에서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에 따른 원주민 내몰림 현상)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인근의 한 폐업처리업체 대표는 "최근에도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손님이 많던 빵집이 문을 닫았다”며 “식당이며 카페며 폐업하는 곳이 많아 창고가 꽉 찼다. 요즘에도 문의가 많지만 이제 받아주기도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성동구가 추진한 ‘젠트리피케이션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성수동 일대 상권의 3.3㎡당 환산임대료는 2021년 4분기 15만5929원에서 2022년 4분기 18만6863원으로 약 20% 상승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