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에 10조+α…비급여와 급여 섞는 '혼합진료' 금지 추진(종합)

정부, 민생토론회서 필수의료 패키지 발표…의대 '지역인재전형' 대폭 확대
취약지 '지역수가' 도입…'보험 가입하면 의료사고 기소 면제' 특례법 추진
의료비 부담 주범 '비급여' 줄이고, 금융위와 함께 '실손보험' 손본다
정부가 지역의 의사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장학금·수련비용·거주비용을 지원받은 의사가 일정 기간 지역에서 근무하는 '지역필수의사제'를 추진한다.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필수의료 수가(의료행위 대가)를 집중적으로 인상한다.

모든 의료인을 보험·공제에 가입하도록 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공소 제기를 면제해 주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도 추진한다.

의료비 부담 증가의 주범인 비급여를 줄이기 위해 비급여와 급여를 섞는 '혼합진료' 금지를 추진한다. 보건복지부는 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개최한 민생토론회에서 이런 내용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금이 지체된 의료개혁 완수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절감하고 모아 모든 역량을 결집하겠다"며 "곧 발표 예정된 제2차 건강보험종합계획을 통해 패키지 추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 野 지역의사제 대안 '지역필수의사제'…지역인재전형도 대폭 늘리기로
복지부는 지역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지역필수의사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학과 지자체, 의대생 등 3자가 계약해 의대생이 장학금과 수련비용 지원, 교수 채용 할당, 거주 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 대신 일정 기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지역의료리더 육성 제도', 의사가 충분한 수입과 거주 지원을 보장받고 지역 필수의료기관과 장기근속 계약을 맺는 '지역필수의사 우대계약제' 등을 추진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의료법 개정을 통해 도입을 추진하는 '지역의사제'에 대한 대안 성격이다.

지역의사제는 대학 입시 단계에서 지역에서 근무할 의사를 뽑아 법으로 지역 근무 의무를 부여하는 방식인데, 법이 아니라 계약을 통해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라는 차이가 있다. 대학입시에서 지역인재 전형의 지역출신 의무선발 비율도 대폭 높인다.

지금은 비수도권 의대 정원의 40% 이상(부산대, 전남대, 경상대 등 일부 대학은 80%)을 지역 인재를 뽑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 비율을 크게 높이겠다는 것이다.

필수의료가 취약한 지역에는 더 높은 수가를 적용해주는 '지역수가' 도입도 추진한다.

중소 진료권별로 의료 수요·공급·이용 실태 등을 분석해 취약 정도를 판단한 뒤 더 높은 수가를 적용한다.

필수의료 인력·인프라 확충과 역량 강화 지원에 사용할 '지역의료발전기금' 신설도 고려한다.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상급종합병원, 2차 병원(병원·종합병원), 전문병원, 의원 등 각 급별 의료기관도 기능에 맞게 정비한다.

상급종합병원 등 국립대병원은 권역 필수의료의 중추 역할을 하도록 육성하고, 일부 상급종합병원은 4차 병원에 해당하는 '고도 중증진료병원'으로 기능을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필수의료에 특화한 2차 병원을 70개 중(中)진료권에 각각 3∼4곳 육성해 성과(의료 이용률 상승, 치료가능사망률 저하)에 따라 보상하는 '혁신형 수가 제도'도 내년부터 적용한다.

지역 거점병원과 병·의원 사이 진료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지역의료 혁신 시범사업'에는 3년간 500억을 투입한다.
◇ 형사처벌 부담 완화·의료사고 보상 확대…필수의료엔 '10조 보상'
의료계의 요구가 컸던 의료 사고에 대한 형사처벌과 고액 배상 부담 완화도 추진한다.

모든 의료인을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하도록 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공소 제기를 면제해주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연내 추진한다.

다만 이런 특혜는 환자 동의와 의학적 판단 근거가 있을 경우, 의료분쟁 조정·중재에 참여할 경우에 한한다.

의료 사고로 인한 환자와 의료진의 갈등이 소송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자 '의료분쟁 조정·중재' 제도가 시행 중이지만, 현재는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많은 상황이다.

사망사고를 특례에서 제외할지, 미용·성형 분야는 제외할지 여부는 논의를 더 진행한 뒤 결정한다.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반의사 불벌' 원칙을 적용하고, 필수의료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감면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도 확대한다.

의료인의 과실이 없는 분만 사고에 대해 국가가 70%를 보상하던 것을 100%로 높이고, 보상금 한도도 큰 폭으로 올릴 방침이다.

의학적으로 입증이 될 경우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대상을 분만 외에 '소아진료' 등으로 넓힐 계획도 갖고 있다.

응급실에서 의료인과 환자의 안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보안인력 채용, 검색대 설치 등에 드는 비용도 지원한다.

응급실 출입자에 대한 보안 검색과 주취자·정신질환자 등에 대한 신체 보호장구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관련 수가도 집중적으로 인상한다.

난이도, 위험도, 숙련도, 대기·당직시간 등을 고려한 '공공정책수가'를 추가로 주는 방안을 분만, 소아 분야에 우선 적용한다.

중증·필수의료 인프라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사후에 보전하는 '대안적 지불제도'도 도입한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의 연속 근무시간 상한선인 36시간(응급상황시 40시간)을 낮추고, 전공의 수련 실태조사를 실시해 전공의 배정과 연계하는 등 전공의 수련체계 개편도 추진한다.

임상 수련을 마친 의사에게만 개원할 수 있는 면허(임상의사 면허)를 주는 방안을 도입하는 등 의사 면허 체계도 손볼 계획이다.
◇ 비급여에 '메스' 댄다…복지부-금융위, 실손보험 상품 사전협의
복지부는 환자의 의료비 부담 증가와 필수의료 분야 의료인력 유출의 주범으로 꼽히는 비급여 진료에 대해서도 '메스'를 댈 방침이다.

비급여는 비용을 국민건강보험이 아닌 환자 본인이 부담한다.

실손보험 도입 후 수입을 늘리려는 의료기관과 보험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비급여 진료가 급격하게 늘었고, 그만큼 환자의 부담도 커졌다.

이에 비급여와 급여를 섞어 사용하는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백내장 수술을 할 때 비급여인 다초점렌즈 수술을 하도록 한다거나, 급여가 적용되는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도수치료를 유도하는 식으로 급여 적용이 되는 치료를 하면서 '비급여 항목'을 끼워 넣어 환자의 부담을 늘리는 행태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도수치료를 할 때는 급여가 적용되는 재진 진찰과 물리치료를 함께 받게 되는데, 복지부에 따르면 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부담하는 비용은 연간 640억원이나 된다.

이와 함께 복지부와 금융위원회, 의료계, 소비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공사보험협의체'를 구성해 실손보험 상품 개발과 변경 시 사전협의하도록 제도화한다.

미용의료는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의사가 아니어도 시술할 수 있도록 자격 체계를 개선하기로 했다.

보톡스, 필러, 문신, 피부 레이저 치료 등의 시술을 일정 자격을 갖춘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허용할지를 논의할 계획이다.

영국, 캐나다 등은 의료적 필요성이 낮고 안전성이 확보되는 일부 미용의료 시술에 대해 별도의 자격 제도와 관리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이번에 발표한 대책 중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한 과제에 대해 논의를 심화할 계획이다.

위원회는 의료사고특례의 쟁점이나 비급여 제도 개선, 수련·면허 개편, 지역필수의사제, 지역의료기금 등의 과제에 대해 공론화하고 정책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로,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되, 소비자단체, 환자단체 활동가 등도 위원으로 참여시킬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