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띄운 '低PBR 테마'…코스피 웃고 코스닥 울었다
입력
수정
지면A2
'밸류업' 발표 후 증시 요동정부가 띄운 주가순자산비율(PBR) 테마가 증시를 뒤흔들고 있다. 주가가 장부가보다 낮은 이른바 저PBR 기업을 집중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이에 화답하듯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 계획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일제히 오름세다. 하지만 유가증권시장의 저PBR주로 자금이 대거 이동하면서 상대적으로 PBR이 높고 자산이 적은 코스닥 종목들은 급락했다.
주가부양 소극적이면 명단 공개
기업들, 주주 환원 발표 잇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
"미래 투자금 갉아먹어" 우려도
동국홀딩스·한화 급등했지만
자산·유보금 적은 성장주 급락
증권가에선 저PBR 테마의 부각이 국내 증시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 압박에 밀린 기업들이 미래 투자금을 헐어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모양새가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발(發) 코스피 랠리
1일 코스피지수는 1.82% 오른 2542.46에 장을 마쳤다.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가 이날 각각 1조400억원, 226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다. 신년 벽두부터 내리막을 걷던 코스피지수는 지난달 17일을 기점으로 반등세가 뚜렷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저PBR주의 몸값을 높이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영향이다.토지, 공장 등 자산이나 현금, 계열사 지분 등이 많은 기업은 급등하는 양상이다. 대표적인 종목군이 지주사다. 동국홀딩스(15.37%), 한화(10.09%) JB금융지주(9.97%) 삼양홀딩스(8.86%) 등이 이날 나란히 급등했다.대기업과 금융사들은 잇따라 자사주 소각 및 배당 확대 계획을 내놔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다. 전날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겠다고 밝힌 하나금융지주는 이날 8.79% 뛰었다. 역시 전날 자사주 1조원어치를 소각하겠다고 밝힌 삼성물산도 이날 7.75% 올랐다.
반면 자산이 적은 성장주가 대거 몰려 있는 코스닥시장은 투자자 이탈에 고전하고 있다. 코스닥지수는 나흘째 내리막을 탔다. 17일 이후로 따지면 4.1% 떨어졌다. 세계 주요 지수 중 하락폭이 가장 크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다음달 하순께 유가증권시장 전체 상장사와 코스닥 상장사 150곳에 적용된다. PBR 지표가 낮은 동시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밝히지 않은 기업을 외부에 공표하겠다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명단을 외부에 공개하는 이른바 ‘네이밍 앤드 셰이밍’(명단을 공개 거론해 압박하기) 전략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증시 레벨업 계기 될까
금융당국은 공개 대상인 ‘주가 낮은 기업’ 기준을 설계하고 있다. 당국 안팎에서는 ‘PBR 1배 미만 기업’을 유력한 기준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벤치마킹한 일본의 증시 부양책도 PBR 1배 미만을 겨냥했다. 작년 3월 도쿄증권거래소는 PBR이 1배를 밑도는 기업에 경영 개선 방안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일본 주가가 최근 상승 곡선을 그린 것도 이 제도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증권업계에서는 이번 기회를 고질적인 국내 증시의 저PBR 기조를 깨뜨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PBR은 세계 주요 증시 중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기업들 사이에선 반발 목소리도 적지 않다. 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중후장대 중심의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우리나라 기업들과 서비스업 인터넷 소프트웨어 중심 해외 기업의 자산 대비 주가 수준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 압박에 밀려 기업들이 ‘PBR 거품’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PBR을 단기간에 높이려면 자산을 매각하거나 자사주를 사들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만큼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투자 여력도 줄어든다.
김익환/선한결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