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야하다"…방송 '부적격' 맞았어도 19금 아니라고? [연계소문]

[김수영의 연계소문]
연(예)계 소문과 이슈 집중 분석

가요계 '가사 선정성' 논란
(여자)아이들 '와이프' 공개되자
"왜 19금 음원 아니냐" 시끌
음반 사전 심의 없어…창작자 역할 중요
MV는 사전 심의 기관·기준 제각각
그룹 (여자)아이들 /사진=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케이크 좀 구웠어 / 그게 다가 아냐 위에 체리도 따 먹어줘 / 조심스레 키스하고 과감하게 먹어 치워 / 어떤지 맛 표현도 들려 보여줘'

(여자)아이들의 신곡 '와이프(Wife)' 가사의 일부다. 성행위를 떠올리게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가요계 선정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KBS는 가요 심의를 진행한 결과 해당 곡에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가사가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됐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음원 플랫폼이나 유튜브 등에서 연령 제한 없이 해당 곡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며 누구든 가사를 접할 수 있다.

청취자들은 노래가 좋은 것과는 별개로 전 연령이 즐기기에는 부담스러운 가사라는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K팝이 초등학생을 포함한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이 듣고 따라부르기에 과연 적절하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음원이 '19세 미만 청취 불가' 콘텐츠로 분류되지 않은 것에 의문을 표했다. 이와 관련해 성인 콘텐츠를 임의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게 멜론·지니뮤직 등 국내 음원 플랫폼 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연령 등급을 판단·심의할 수 없다"며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심사를 따르고 있다. 이 외에는 권리사 측의 요청으로 성인물을 지정하기도 한다"고 밝혔다.국내에서 발매되는 음원의 가사는 사전에 심의할 수 없다. '문화 대통령'이라 불렸던 서태지는 1995년 기득권층에 대한 환멸 등의 가사가 담긴 곡 '시대유감'이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에 걸리자 항의의 표시로 가사를 뺀 연주곡만을 앨범에 실었다. 이에 팬들은 서명 운동을 벌였고, 헌법재판소는 이듬해 가요 사전심의제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대중문화계에서 지켜온 '음반 사전심의제 폐지'의 역사다.

이에 따라 현재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콘텐츠인지에 대해 검토하는 명목으로만 여성가족부에서 사후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여가부 청소년보호환경과 관계자는 "발매되는 모든 음원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한다. 유해성 기준에 해당한다면 음반심의위원회의 검토를 거친다. 음원 유통사 및 음악 전문가의 의견까지 청취한 뒤 최종적으로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올라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모든 행정절차가 진행되는 데에는 최장 2달까지 걸린다고 했다. '19금 콘텐츠'로 구분될 시 기존에 발매된 음원·음반 등에 추가로 표시해야 한다.

여가부의 '청소년유해매체물(음악 분야) 심의 세칙'에는 ▲음란한 자태를 지나치게 묘사한 것 ▲성행위와 관련해 그 방법·감정·음성 등을 지나치게 묘사한 것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행위를 조장하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기술하는 등 성 윤리를 왜곡시키는 것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미화하거나 조장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국가와 사회 존립의 기본체제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 ▲욕설과 비속어가 사용된 것 ▲둔부·성기·가슴 등 신체 일부를 저속한 언어를 사용해 표현한 것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직접적·구체적으로 권하거나 조장한 것 등이 포함돼 있다.성행위 묘사와 관련해서는 '장면, 과정, 방법에 대해 직접적·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이 더해졌다. 여가부 관계자는 "어른들의 시각일 뿐인 건지, 아니면 청소년도 그렇게 생각할 것인지 등을 두고 이야기해야 한다. 여러 음악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유해성을 살펴본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음반과 달리 뮤직비디오는 2012년 영상물 사전심의제가 도입돼 적용되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혹은 KBS·SBS·MBC·Mnet 등 방송사를 통해 심의받아야만 국내 플랫폼 등에 뮤직비디오를 등록할 수 있다. 영등위 관계자는 "모든 뮤직비디오는 사전 심의 대상"이라면서 "가사도 심의 기준에 포함된다"고 전했다.

방송사의 심의를 받은 경우는 영등위 등급 분류에서 제외된다. (여자)아이들 '와이프'는 영등위가 아닌 방송사를 통해 심의를 진행, KBS에서는 부적격 판정이 나왔으나 SBS와 MBC에서 적격 판정을 받아 뮤직비디오 공개가 가능했다. '깜깜이 기준'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그 가운데 업계에서는 뮤직비디오 사전 심의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플랫폼 사업자는 사전 심의를 완료한 뮤직비디오만 서비스할 수 있는 반면 구글 유튜브 뮤직 등 글로벌 플랫폼들은 별도의 제재가 없어 음원 홍보와 유통의 역차별이 심각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유통주기가 빠른 음악산업 특성상 음원 발매와 동시에 신속하게 뮤직비디오 등 영상물 홍보를 진행해야 하는데 최소 30일 이상 걸리는 사전 심의에 막혀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뮤직비디오에 대한 연령등급심사를 현재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콘텐츠처럼 자체등급분류로 전환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청소년 보호라는 이념과 부딪히고 있다. (여자)아이들 사례 역시 정답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남기게 됐다.

결국 강조되는 건 창작자의 역할이다. 유튜브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누구나 K팝을 쉽게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창작자들의 책임 의식과 자정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정국은 '3D', '세븐(SEVEN)'을 19금 음원으로 발표하며 별도로 연령 제한이 없는 '클린 버전'을 냈다. 동방신기 유노윤호는 누아르 액션 영화 스타일의 '땡큐(Thank U)' 뮤직비디오의 19금 판정을 유지해 그대로 공개한 바 있다.한 업계 관계자는 "19금 콘텐츠가 되면 미디어 노출, 홍보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생길 수 있지만 K팝 소비 연령이 낮아진 점을 무시해선 안 된다. 자발적인 자정 사례를 꾸준히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