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만 살아나면 급등한다"…너도나도 뛰어드는 기업들 [원자재 이슈탐구]

금 생산기업들 구리 채굴 기업으로 변신 중
금과 함께 투자하면 위험 분산 효과
구리 찾아 무장반군 장악 지역까지 진출
사진=게티이미지
금 채굴 기업들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오른 금값 덕분에 벌어들인 수익을 구리에 투자하고 있다. 그동안 금광 기업들은 금 광산과 함께 발견되는 구리를 금의 부산물 정도로 취급했다. 그러나 선진국을 중심으로 화석 연료를 버리고 친환경 에너지 전환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기업과 투자자들은 금이 아닌 구리의 미래 가치에 눈을 떴다.

구리 가격의 대세 상승은 아직 현실화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초엔 중국의 코로나19 팬데믹 종료와 함께 구릿값이 '슈퍼사이클'에 접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보기 좋게 틀렸다. 중국은 부동산 부문의 과도한 부채 문제로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파나마의 초대형 구리광산의 조업이 중단되는 등 글로벌 공급이 대폭 줄었음에도 구리 가격은 급등하지 않았다.

금광 기업들, 구리광산 투자 열풍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금 채굴 업계 1·2위 기업인 미국 뉴몬트와 캐나다의 배릭 골드를 중심으로 금광 기업들의 구리 광산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구리 수요가 2035년께 지금의 약 2배 수준으로 증가한다는 S&P글로벌 등 일부 전문가들의 예측이 현실화해, 구리 가격이 폭등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전기차는 가솔린 자동차보다 약 4배 많은 구리를 사용하며, 풍력·태양광 발전소를 구축하는 데도 화석연료 발전소에 비해 ㎿ 당 훨씬 더 많은 구리가 필요하다는 게 근거다.

글로벌 금 생산 2위 기업 배릭골드는 금 보다 구리 확보에 치중하고 있다. 배릭골드는 파키스탄 레코디크 지역에서 70억달러 규모의 구리·금광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발루치스탄 해방군(BLA) 등 다수의 반군 단체가 출몰하는 지역이다. 반군의 테러로 중국도 진출을 꺼리는 곳으로 알려졌다. 배릭골드는 이 곳에서 2028년에 생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마크 브리스토우 배릭 골드는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11월 투자자들에게 "파키스탄에 사업장을 건설하고 잠비아 코퍼 벨트 지역의 룸와나 광산을 확장해 메이저 구리 생산업체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배릭골드는 지난해 실패했던 광산기업 퍼스트퀀텀미네랄(FQM) 인수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FQM은 파나마에 초대형 구리 광산을 개발한 뒤 행정 소송에서 패소해 채굴 허가권이 무효가 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에 본사를 둔 뉴몬트는 작년 11월에 호주 뉴크레스트 마이닝을 약 150억 달러에 인수했다. 세계 최대 금 생산기업 자리를 지키려는 게 아니라 뉴크레스트의 구리 사업을 노린 인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톰 팔머 뉴몬트 CEO는 "향후 10년 내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양의 구리가 부족해지는 사태를 겪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몬트는 뉴크레스트 인수 후 전체 매출의 약 10%를 구리에서 얻고 있다. 예정된 광산 개발이 이뤄지면 구리 비중이 20%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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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리 동시 투자하면 '보험 효과'

호주 BHP그룹과 리오틴토 등 다양한 광석을 채굴하는초대형 광산업체들도 구리 탐사에 뛰어들었음에도, 금광 기업들이 앞서 나가는 것은 금과 구리의 특성 때문이다. 구리와 금은 비슷한 지질환경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동시에 매장된 경우가 많다. 항만이나 운송 도로·철도 등 광산 인프라를 공유할 수 있어 쉽게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금광 기업들은 금 뿐만 아니라 구리 탐사·채굴 등에 대한 노하우도 갖췄다.

다만 현재로선 구리 투자로 금광 기업들이 큰 이익을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리 가격은 2022년 3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 이상 하락했다. 지난 2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구리 가격은 파운드 당 3.8달러(3월 인도분 선물)대 초반에서 거래됐다. 리튬과 니켈 등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다른 원자재 가격에 비해선 덜 내렸지만, 구리 역시 전기차 판매 성장률 정체와 글로벌 경제 전망에 대한 우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GM 등 일부 자동차 메이커는 전기차 투자 계획을 연기했다. 향후 구리 수요 증가가 예상을 밑돌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금광 기업들은 다른 이유를 들어 꾸준히 구리 광산에 투자하고 있다. 금은 경제 전망이 어두워지고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 및 기타 금융 위험에 대비할 때 가격이 상승한다. 반면 구리의 시세는 경제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일 정도로 경기에 민감하며, 경기가 좋아지면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회사 수익 면에서 금과 더불어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사들도 구릿값 상승 베팅에 동참면서 자금도 풍부해졌다. 대형 기업 뿐 아니라 캐나다 금광기업 아그니코이글은 지난해 5억8000만달러를 주고 텍리소스로부터 멕시코 사카테카스주 산니콜라스 구리·아연 프로젝트 지분 절반을 확보했다. 에볼루션마이닝은 중국 낙양몰리브덴(CMOC) 그룹에 4억7500만달러를 지불하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있는 노스팍스 구리·금광 지분 80%를 인수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하모니골드마이닝 호주 퀸즐랜드의 2100㎢에 달하는 지역에 대한 구리·금 탐사 개발권을 최대 2억3000만달러에 인수하는 등 구리광산 투자 열풍은 금 채굴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