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韓, 변화를 인정하는 사회…영화 환경도 잘 갖춰져"

'괴물' 50만 돌파해 감독 최고 흥행 日영화 등극…"한국서 장기 상영 예상못해"
"송강호·배두나 이어 김다미·한예리와도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괴물'이 한국 극장에서 상영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
영화 '괴물'을 연출한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5일 강남구 뉴(NEW) 사옥에서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괴물'이 사랑받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영화 개봉 당시에는 스케줄 문제로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지만,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괴물'은 최근 누적 관객 수 50만명을 넘기면서 고레에다 감독의 일본 영화로는 최고 흥행작이 됐다. 그는 '아무도 모른다'(2005),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 등을 통해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나 관객 수는 대체로 10만명대 안팎이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각본가의 훌륭한 시나리오와 오디션을 통해 뽑힌 구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 두 아역 배우의 매력 덕분"이라고 '괴물' 흥행의 공을 돌렸다.

일본의 유명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가 시나리오를 쓴 '괴물'은 그간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인 아동 성소수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 영화는 네이버에서 평점 9점대를, 왓챠피디아에서 4.3점을 기록하며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어떤 부분이 한국 관객의 마음을 울렸는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다"면서 "오히려 제가 관객분들에게 물어보고 싶다"며 웃었다.

그는 다만 "일본에서는 '같아야 한다, 일반적이어야 한다, 비슷해야 한다'는 보통의 가치를 중시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배제하는 문화가 강하다"며 "한국은 변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라는 게 차이점"이라고 짚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공기인형'(2009) 주인공으로 배두나를 내세우고 한국 영화사와 작업한 '브로커'(2022)의 메가폰을 잡는 등 한국과 연이 깊다.

특히 '브로커'로는 송강호에게 한국 배우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그는 이번 방한 때도 짬을 내 송강호와 배두나를 만났다고 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송강호 배우는 '괴물'에 대해 매우 적확하고 훌륭한 해석을 해줬다"면서 "배두나는 두 소년의 연기를 두고 크게 칭찬하더라"라고 전했다.

그는 현재 계획 중인 한국 작품이나 한국 배우가 나오는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은 비밀"이라며 "구체적이진 않지만 실현되기를 바라는, 한국 배우들과 함께하고 싶은 (작품의) 기획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송강호 씨와 배두나 씨를 이번에 만나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

김다미, 한예리 같은 배우들도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가능하다면 함께 일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고레에다 감독이 한국 배우, 제작사와의 협업에 거리낌이 없는 데는 '브로커' 연출 경험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는 "'브로커'를 만드는 동안 한국에 체류하면서 영화 촬영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한국의 스태프는 젊고 씩씩하고, 노동시간이나 (관행적인) 폭력에 대한 관리가 잘 돼 있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 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좀 더 교류가 활발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해 전부터 일본판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일본에도 영상산업을 전담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이끄는 모임인 a4c의 대표를 맡았다.

그는 그간의 a4c 활동 성과를 묻는 말에 "일본에서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좀처럼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며 씁쓸해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런 단체가 있어야 하는 이유와 일본 영화계에 닥친 위기감을 공유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관련 활동을 해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