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만전자'도 먼 일 아냐…노는 현금으로 주주환원하라"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뮬레이션 결과 발표
"이사회 결단 내리면 기업가치 올릴 수 있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결하려면 상장사들이 주주환원에 보다 적극 나서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휴자산을 팔아 마련한 자본금으로 자사주를 대거 사들여 소각하고, 주주환원 비율을 올리는 식으로 국내 증시 상장사 주가를 50∼120% 올릴 수 있다는 예상이다.

5일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서울 여의도동 국제금융센터(IFC)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고착화시킨 가장 주요 요인은 상장사들”이라며 “세계 기업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경쟁을 하는데 우리만 뒤쳐져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주요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 학계 인사 100여명이 속해 있다.

“이사회 통해 기업가치 두 배 이상 높일 수 있어"

이 회장은 “국내 상장사들은 손익계산서상 성과에 집착하고 재무상태표는 장기간 방치해 왔다”고 했다. 과도한 양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거나 딱히 수익이 나지 않는 땅을 보유하고 있는 등 이른바 ‘노는 자산’이 많다는 얘기다. 다른 상장사와 자사주를 맞교환한 경우도 이같이 분류했다.

그는 “국내 대표적 상장사들이 제대로 주주환원에 나서면 주당 가치를 확 올릴 수 있다”며 “굳이 주주총회까지 가지 않아도 기업 이사회가 몇 개 결정만 내려도 기업 펀더멘털 가치를 두 배 이상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이사회를 중심으로 재무상태표상 '무수익 자산'을 찾아 정리하고 주주를 위해 현금을 사용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라는 주장이다.

"'노는 현금'으로 자사주 사 소각…순이익 30% 이상 주주환원하라"

이 회장은 구체적으로 주요 상장사 일부를 거명해 '리레이팅 전략'을 제시했다. 먼저 현대차에 대해선 우선주를 전량 소각하라고 제안했다. 이 회장은 "현대차가 보유현금 19조원 중 8조원을 투입해 시중 우선주를 전량 매입한 뒤 소각하면 주당 순자산이 30%가량 늘고 배당금은 7000억원가량 절약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서 주가를 주당 30만원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이 조성을 추진 중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삼성동 부지에 대해서도 매각을 제안했다. 땅을 팔아 유입 자금으로 미래 모빌리티에 투자하라는 얘기다. 그는 이어 "현대차는 현대건설 지분 21%, KT 지분 5% 등을 각각 매각해 유입자금 1조3000억원으로 주주환원에 나서야 한다"며 "여기에다 향후 순이익의 30~50%가량 주주환원을 약속하면 주가가 50만원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현금 92조원 중 50조원을 투입해 국내 시중 우선주를 전량 매입하라는 제안이다. 이중 20조원은 즉시 소각하고, 나머지 30조원은 우선주를 근거로 미국에 ADR을 상장하라고 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는 대만 TSMC의 거버넌스와 주주환원을 한 수 배울만 하다”며 “TSMC처럼 이사회를 국제 경험이 많은 글로벌 인사로 구성하고 더 높은 주주환원을 약속하면 PBR이 기존 1.4배에서 2.2배로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TSMC는 이사회 10명 중 한 명만 사내이사로 두고 있다. 사외이사는 각국 국제경험이 많은 리더들로 구성했다. 반면 삼성전자 이사회는 전부 한국인이거나 한국계 인사다.

"국내 주요 상장사 저평가 심각…피해는 투자자가"

이날 이 회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보여주는 사례로 현대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대기업이 국제자본시장 리그테이블에서 빠진 것을 들었다. 현대차는 작년 27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고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했지만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세계 10대 자동차·부품사 리스트에서 탈락했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이는 현대차 주가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자동차 회사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며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세계 최고의 반도체·스마트폰, 가전 제조사임에도 불구하고 MSCI 세계 10대 우량기업 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했다”고 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영업에만 치중하고 자본 효율성과 주주 환원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게 이 회장의 지적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한국 증시는 총주주수익률(TSR·배당 포함) 기준 연평균 2% 손실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일본이 각각 연평균 +9%, +12%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 회장은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면 직접적인 피해자는 젊은 세대 투자자들이 받는다”며 “같은 돈을 투자해 훨씬 적은 돈을 벌기 때문에 금융자산 축적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 사례 본받아 PBR 올려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날 일본의 기업 거버넌스 개혁 사례를 본받아 한국 기업들도 주주 중심으로 경영 개선을 해야 국제 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럼에 따르면 일본거래소는 일본 기업들에 손익계산서상 매출·이익·시장점유율에 집착하지 말고 자본비용과 주가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라고 권장했다. 단기적인 성과보다 주주가치 제고에 신경을 더 쓰라는 얘기다. 이사회가 PBR이 낮은 이유를 분석해 구체적인 개선책을 발표하라고도 권유했다.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ROE 개선 계획을 갱신해 투자자들과 공유하라고도 했다.

이 회장은 “일본 IT기업 히타치는 10% 이상 투하자본수익률(ROIC)을 주요 성과지표로 삼고 주주환원 목표를 구체적으로 잡았다”며 “이 결과 지난 5년간 히타치 주가는 153% 올랐고, PBR은 0.6배에서 1.9배로 올랐다”고 했다.

"밸류업 프로그램, 이사회 위주로 추진 필요"

이 회장은 이날 “최근 정부가 추진한다고 밝힌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적극 지지한다”며 “일부 기업이 반대해도 흔들림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상장사들이 주가 디스카운트 해소에 나선 뒤 징벌적 상속증여세를 경감해줘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선 몇가지 제언을 내놨다. 기존안대로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기재하도록 권장하는 대신 별도 보고서를 내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의 이사회가 위주로 이뤄져야한다고도 주장했다. 당국이 프로그램을 최소한 3년 이상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프로그램 시행·미시행사 명단을 정기적으로 갱신해 공개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포럼 부회장을 맡고 있는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는 "기업 이사회는 기업의 임원들이 아니라 주주를 대변하는 조직"이라며 "이사회가 주주들의 의사를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사회는 주주의 뜻을 잘 반영하고, 궁극적으로는 이사회와 최대 주주간의 이해관계가 정합되는 게 좋은 구조"라고 덧붙였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