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산더미지만"…4년마다 돌아오는 '개점휴업' 국회, 왜?

'선거 유세'에 뒷전으로 밀리는 '입법 활동'
정족수 미달에 법안 논의조차 '전전긍긍'
전문가 "평소 입법활동 충실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걸 알지만, 국회의원 당선이 현실적으로는 먼저 아니겠습니까."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가 한 말이다. 10년 넘게 국회 의원회관에서 일해 온 이 관계자는 "총선이 코앞까지 다가온 지금 시점에선 (의원들이) 입법 활동을 할 시간에 지역 주민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선 경쟁이 본격화될수록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이날 오후 기자가 의원회관을 찾아가 보니 의원실 대부분은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일부 의원실은 1~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력을 모두 설 명절과 맞물려 지역구 총선 경쟁에 투입하기도 했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국회를 두고 정치권에선 "어쩔 수 없다"면서도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법안 발의 전년 대비 66% 감소

사진=뉴스1
여의도 정치권에선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 시즌마다 "의원들의 입법 활동이 사실상 멈춰 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원들이 당선을 위해 지역구 유세에 매진하기 때문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지역 활동에 집중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정치 현안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고백했다.의원들의 ‘입법 경쟁’도 저조한 편이다. 11일 기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까지 상임위원회에 발의된 법안은 216건이다. 같은 기간 639건과 비교해 약 66% 감소한 수치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회기가 끝날 무렵엔 법안이 논의조차 거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입법 논의가 힘이 빠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공천을 받지 못한 의원들이 의욕을 잃고 의정 활동이 소극적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의원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된 현역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입법을 할 동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공천을 앞둔 시기에 의원들의 법안 발의가 많지만, 선거를 앞두고는 법안 발의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평소 입법 활동 충실해야"

국회 상임위에 계류된 법안에 대한 논의조차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원들의 개인 일정을 조율하기 어려워 법안을 다루기 위한 상임위를 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법상 법안을 의결하기 위해선 재적 의원의 과반수 출석한 가운데 과반수가 동의해야 한다.지난해 12월 5일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원회는 의원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30분 만에 산회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소속 김성원 소위원장은 "참석해 주신 위원님들에게 더 없는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불참하신 분들에겐 한없는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사진=뉴스1
지난해 12월 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선 국회부의장이 표결을 위해 의원들이 자리를 지켜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147건의 안건을 심사하기 위해 회의가 길어지자 의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운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민주당 소속 김영주 부의장은 "연말 지역구 일정으로 매우 바쁘겠지만 지금 부지런히 (법안 처리를) 진행하고 있다"며 "과반에 못 미쳐 (법안) 표결이 안 되면 큰일 나니까 의원님들이 자리를 비우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날 일부 법안은 재적인원과 출석 인원의 과반수(149명)를 가까스로 넘긴 153명이 출석한 상황에서 표결이 이뤄졌다.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여야가 최대한 임시회를 열고 입법 활동을 해도 선거를 앞두고 일정에 차질을 빚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 "평소에 국회 활동을 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