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업 없는 스카이라인 공약이 걱정되는 이유

재원 문제 없다는 여야 철도 공약
기업 인센티브 없이 현실성 있나

정소람 정치부 기자
“뉴욕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같은 것이 생긴다고 생각해 보라.”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을 찾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천천동을 둘로 갈라놓은 철도 위 보도육교에서 ‘철도 지하화’ 공약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민간이 상부 공간을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재개발하고, 여기서 나오는 개발 차익으로 지하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은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다음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술 더 떠 전국의 철도를 ‘예외 없이’ 지하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대표는 “이제 경비 문제도 해결되고 정책적으로도 가능한 상황이 됐다”고 주장했다.과연 그럴까. 그동안 선거 과정에서 논의된 수많은 개발 과제 중 상당수는 ‘유령 도시’ ‘유령 건물’만 낳았다는 평가가 많다. 사업성 평가나 재원 조달안 마련 없이 청사진만 내세우기 바빴기 때문이다. 2007년 ‘한국의 두바이’로 기대를 모았던 새만금이 대표적이다.

한 위원장이 언급한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019년 1단계 개발을 마친 허드슨야드는 미국 역사상 최대 복합 개발 프로젝트로 많은 도시가 롤모델로 삼는 곳이다. 방치됐던 철도 위 부지에 고급 주거 건물, 호텔, 오피스 빌딩, 고급 쇼핑몰 등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철길을 복원해 만든 ‘하이라인 파크’까지 이어지는 이 일대 보행로는 ‘뉴욕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로 꼽힌다. 전 세계 자본과 관광객이 몰려든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도심의 성공 기저엔 기업들의 스토리가 있다. 미국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가장 먼저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최상위 10개 층을 사들여 본사를 옮겼다. 이 소식은 반신반의하던 투자자들에게 ‘보증 수표’ 역할을 했고, 블랙록·웰스파고 등도 잇따라 둥지를 옮겼다. 허드슨야드에 거주 중인 한 금융회사 임원은 “오피스 장기 임대 혜택, 고급 주거용 빌딩 매입 저리 대출 등 인센티브가 많았다”며 “미디어 등 다른 업종 기업이 줄줄이 입주하면서 ‘제2의 월스트리트’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야의 공약엔 ‘기업’ 대신 ‘기대’만 있다. 용도 규제 등을 풀면 자연스럽게 기업이 몰려들어 개발해줄 것이라는 식이다. 한 경제 전문가는 “철도 지하화 사업은 지역당 수조원이 드는데, 민간 투자 유치로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세제 혜택 등 강력한 인센티브가 없다면 굳이 산업 기반이 없는 도시를 택할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역 산업 구상이 없는 공약만으로 도시의 텅 빈 ‘스카이라인’이 채워지길 바라는 건 과한 기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