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일본 사회보장 개혁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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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전 세계에서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는 일본이다. 지난해 일본의 고령인구 비중은 29.1%로 추산된다. 우리나라는 내년에 20%를 넘어서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2006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우리보다 20년 앞서 인구 고령화 문제들을 경험했다. 이런 와중에 일본은 2022년 12월 ‘전세대형 사회보장 구축회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일본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방향을 담고 있다. 개혁안의 핵심 내용은 저출생 문제를 국가의 존속을 결정할 중대한 과제로 규정하고, 보육 및 육아 지원 그리고 청년세대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고령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축소하는 등 의료보험과 개호보험(일본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효율화 계획을 제시했다.이 보고서에 담긴 ‘전세대형’이라는 용어는 사회보장의 국가 책임을 고령, 실업, 질병, 장애 등 전통적인 위험에서 일·가정양립 미흡에 따른 출생률 저하, 청년 문제 등 미래 세대를 위협하는 사회적 위험으로 전환하는 걸 의미한다. 또한 사회보장 재원 마련에서 ‘전세대의 공평한 부담’ 원칙도 반영돼 있다.
일본이 이렇게 사회보장제도의 전환과 개혁을 추진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국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2021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56%에 달한다. 2010년 재정 위기에 직면했던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크게 능가하는 수치다. 일본의 높은 부채 비율은 인구 고령화로 급증한 사회보장 지출 상당 부분을 국가부채로 충당한 것과 관련이 깊다. 2023년만 해도 일본 정부 예산 중 신규 국채 발행 의존도는 31%였는데 사회보장 전체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지난 20년간 일본은 점진적으로 개호보험 혜택을 줄이고 민간 역할을 활성화하는 등 인구 고령화 지출 효율화에 힘써왔다. 그런데도 저출생 추이가 지속하면서 인구 고령화와 노년부양비가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따라서 현행 사회보장체계의 지속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지고 더 이상 개혁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년부터 한국은 일본이 20년간 거쳐온 험난한 과정을 헤쳐가야 한다. 후발 주자의 장점은 선행 주자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 삼아 더 효율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없던 기술 진보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조차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인구 변화를 따라가고 있다. 출산율은 일본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고 인구 고령화 속도는 두 배 빠르다. 20년 후 한국의 고령인구 비중은 일본을 추월하게 된다. 한국이 앞으로 직면할 인구 위기를 헤쳐가려면 일본보다 더 선제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